IPO 못지않은 ICO 열풍…"거품" vs "대세" 글로벌 논쟁 격화
2008년 10월. 암호화기술을 다루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정체불명의 저자가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올렸다. 개인과 개인이 은행과 같은 중개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송금 및 결제를 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듬해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개발해 기술을 구현했다. 첫 번째 가상화폐의 탄생이다. 비트코인이 발행된 지 9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 1100개가 넘는 가상화폐가 유통되고 있다.

토종 가상화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블록체인 관련 업체들이 새 가상화폐를 발행해 투자금을 모으는 가상화폐공개(ICO) 시장이 열리면서다.

세계적으로 ICO를 통한 자금 조달이 열풍처럼 번지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상화폐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찰스 호스킨슨조차 “ICO 시장은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ICO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인지 검증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유명 블록체인 기술자들이 개발에 참여했다는 허위 내용이 담긴 ICO 사업 정보가 나돌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ICO를 통해 가상화폐 발행만 한 뒤 실제 사업을 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달 한국에서도 한국형 가상화폐를 개발했다며 투자자에게 200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붙잡혔다. 이들은 해킹에 안전하고 시중은행과도 연결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가상화폐를 개발했다고 속여 투자자를 모집했다.

중국은 이 같은 위험 탓에 지난 4일 ICO를 전면 금지했다. 러시아는 가상화폐 투자계획을 철회하고 관련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은 지난 1일 금융위원회가 ‘가상통화 현황 및 대응방안’을 발표했지만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상화폐를 악용한 불법거래나 관련 투자를 빙자한 유사수신다단계 등 사기범죄 발생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법제도를 정비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금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블록체인 기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ICO가 활발해진 상황에서 한 국가 안의 규제는 무의미하다는 논리에서다. 김서준 블록체인파트너스코리아 파트너는 “ICO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블록체인 기술들이 국내에서 탄생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ICO 시장의 안착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7월 가상화폐를 증권법 적용 대상으로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상화폐를 인정한 데 이어 ICO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영국 독일 태국 일본 등도 비슷한 자세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각국 중앙은행이 더 이상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성장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중앙은행은 가상화폐의 속성을 규정하고 이를 직접 발행할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핀테크(금융기술) 전문 벤처투자 관계자는 “ICO와 가상화폐는 모두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되는 만큼 역량 있는 개발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애당초 사업이 불가능하다”며 “투자자는 개별 사업역량을 꼼꼼하게 따져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영연/추가영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