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나간 학부모들 분개…"사립유치원 무책임 행태에 정부 어설픈 대응"
"휴업 참여한다던 유치원 명단 만들자" 움직임도
'휴업철회-강행-철회' 주말 대혼란… "유치원 쉬나요 안쉬나요?"
"그래서 우리 유치원은 쉬나요, 안 쉬나요?"
사립유치원들이 금요일인 지난 15일 오후부터 집단휴업 철회와 번복을 반복하면서 주말 내내 애꿎은 학부모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워야 했다.

원생들의 학습권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무책임한 행동과 내분에 교육부의 어설픈 대응이 더해지면서 혼란을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주일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기회인 주말에 휴업 여부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학부모들은 휴업에 참여하기로 했던 사립유치원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한유총 사무국은 16일 밤 입장자료를 내어 "한유총 공식입장은 휴업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입장자료에는 최정혜 한유총 이사장과 대구·광주·대전·울산·경기·충북·충남·전남·경북·제주 등 11개 지회장, 인천지회 회원 75%가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여기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서울도 자체 회의를 거쳐 휴업을 철회했고, 경기와 강원 등도 철회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유총의 휴업 철회는 처음이 아니다.

사흘간 두 차례나 반복됐다.

최 이사장 등 한유총 지도부는 15일 오후 교육부와 긴급간담회를 열고 휴업 철회에 전격 합의했다.

하지만 그날 밤 한유총 투쟁위원회는 철회 선언을 뒤집었고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투쟁위 기자회견 후 불과 몇 시간이 안 돼 최 이사장 등 한유총 지도부는 '철회 번복'을 다시 번복하고 휴업을 다시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도부와 투쟁위 사이에 내분이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휴업 등 강경투쟁을 주장하는 투쟁위와 다수의 온건파 사이에 입장 조율은 물론 의사소통마저 전혀 안 되고 있다는 내부 전언도 나왔다.

중대 사안을 두고 휴업 돌입과 철회, 강행, 또다시 철회 결정이 손바닥 뒤집는 듯 계속 번복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불만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 학부모는 경기지역 맘카페에 글을 올려 "이 정도 상황이면 욕해도 되지 않느냐"면서 "학부모 부담을 줄이고자 휴업한다는 한유총 주장이 헛소리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다른 학부모는 "휴업한다고 대책을 세우느라 정신없었는데 정상수업한다고 문자 한 통 달랑 보내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면서 "순진한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는지 묻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한 맘카페에는 휴업을 강행하는 사립유치원 명단을 만들자는 글도 올라왔다.

명단작성을 제안한 학부모는 "우리끼리라도 휴업하는 강경파 사립유치원 명단을 만들어 내년 유치원 보낼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하자"면서 "학부모와 아이들을 볼모로 뭐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휴업과 한유총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컸기 때문인지 정원감축과 모집정지, 유치원 폐쇄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예고한 교육 당국에 대해서는 대체로 지지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충남지역 학부모는 "교육부 강경조치에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꼬리를 내렸다"면서 "이번 기회에 사립유치원에 대한 종합적인 감사를 벌여 각종 비리를 다 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며 무책임한 행보를 보인 한유총에 대한 교육부 대응도 미숙한 면이 있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유총뿐 아니라 차관까지 나서 휴업 철회를 공동 발표하고도 번복 사태를 막지 못해 혼란을 키우는 데 일조한 교육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산의 한 학부모는 "정상수업 방침을 또 엎지는 않을까 불안하다"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만 터졌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국회의원들 도움까지 얻어 휴업 철회 사실을 급하게 발표하면서 정작 한유총과는 어설픈 내용으로 합의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데 '노력한다'는 수준의 합의만으로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것이다.

엄정 대응을 선언했다가 휴업 철회 직후 한유총을 '정책파트너'로 대우하겠다고 한 뒤 다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태도 또한 가벼운 처사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기도교육청 자유게시판에 글을 남긴 한 학부모는 "아이를 유치원에 인질로 잡힌 학부모들은 언제 또 일방적으로 당할지 모르게 됐다"면서 "떼 쓸 때마다 사탕만 물려주지 말고 확고한 시스템과 매뉴얼을 정착시켜달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jylee2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