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도 경제 변해야"…"최저임금 인상, 독일선 수요·소비 촉진"
슈뢰더 전 독일 총리 "한국형 '미텔슈탄트' 육성해야"
"한국의 산업 발전 초기,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들이 근대화 기수였고 또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제 한국도 변해야 한다. 미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독일 '미텔슈탄트' 같은 중소·중견기업 육성이 필수적이다."

방한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73) 전 독일 총리는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월드클래스300 기업 CEO 아카데미'에 특별 강연자로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앞으로는 몸집 큰 기업이 아니라,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들이 한 나라 경제에 기여할 뿐 아니라 경제 생존 자체를 책임지게 될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대표적 중소·중견 기업군(群)인 독일 '미텔슈탄트'를 예로 들었다.

그는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단순히 대기업 완성차 업체로부터 아웃소싱(외주)받아 납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 기술과 고도의 혁신 역량으로 대기업에 대해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는 독일 전체 기업의 99%(360만개)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일컫는다.

보통 매출액 5천만 유로(한화 720억원) 미만, 직원 수 500인 미만 규모로 가족기업의 성격을 갖고 있다.

미텔슈탄트는 지분을 다수 가진 가족들이 위험(리스크)에 대응해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직원들 간 신뢰가 강하고, 단기 이윤에 대한 압박이 적어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 전략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도 미텔슈탄트의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미텔슈탄트는 2차 세계대전 패전을 딛고 독일이 제조업 강국으로 다시 일어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은 다양한 정책을 통해 미텔슈탄트를 지원하고 있다.

독과점을 엄격하게 제한해 중소·중견기업들이 공정한 룰(규칙)에 따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세제 측면에서는 미텔슈탄트가 가업을 승계할 경우 일정 기간 일자리 유지 등을 전제로 상속세를 면제해주는 혜택도 준다.

은행들은 매우 낮은 이율의 대출에 나서 미텔슈탄트는 지원받은 자금으로 연구·개발(R&D)에 주력할 수 있다.

경제적 상호 협력 외에도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독일 간 긴밀한 정치적 협력과 유대 관계도 강조했다.

그는 "독일은 한국이 평화적으로, 자유와 시장경제 원칙을 바탕으로 통일되기를 바란다"며 "한반도 긴장 국면에서 독일은 항상 한국의 편에 설 것이며, 한국과의 연대감은 더 돈독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독일에서는 한국을 존경심 갖고 감탄하면서 보고 있다"면서 "몇 십년만에 이룬 경제적 성장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인의 땀방울과 노력, 근면 성실함에 놀라고 있다.

경제적 성장 뿐 아니라 민주화에 있어서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강연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독일도 최근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했지만, 제조업의 경우 대부분 최저임금 이상 임금을 지불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다만 요식업, 수공업, 미용 등 분야에서는 부담이 있었다"며 "독일에서도 최저임금 도입을 앞두고 일자리 파괴, 경제성장 저하 등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수요가 진작되고 소비가 촉진돼 경제와 사업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에는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 메타바이오메드 오석송 회장 등 월드클래스300 기업협회 회원사 임원 100여 명 등이 참석했다.

히든 챔피언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3위 또는 소속 대륙 1위를 차지하는 매출 40억 달러 이하 우량 중소·중견기업을 말한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