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규제 샌드박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새 정부가 네거티브 규제 입법과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산업·신기술 분야에 대해 사업을 우선 허용한 뒤 문제가 생기면 규제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고, 기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신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출범하면서부터 분배 정의와 복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모처럼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아 고무적이다.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산업과 기업 대부분이 침체에 빠져 있다. 조선·섬유·금속·가전 등 우리의 주력 제조업이 일제히 정체 상태에 있고, 자동차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제조업 가동률은 금융위기 이후 최저로 떨어졌으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제외한 상장기업의 올해 상반기 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4%나 감소했다. 기업뿐만 아니다. 자영업·소상공인 등 서민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청년실업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투자가 일어나고 기업가정신이 활발해져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규제개혁이 단지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 산업의 규제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의료·교육·금융을 포함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산업 규제는 물론 기업 혁신활동을 장려하도록 디지털·바이오 분야 규제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노동 관련 법령과 수도권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말로 경제를 살리려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최저임금과 대기업 법인세율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기업 부담을 늘리는 정책들을 재고해야 한다.

정부 규제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 활성화와 관계있는 재산권 보호와 자유경쟁 촉진을 위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정부 규제가 이런 범주를 넘어선 것이 대단히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 범주를 벗어난 규제들은 시장 과정을 왜곡하며 경쟁을 제한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기업가정신을 훼손시켜 경제를 쇠퇴시킨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기업가정신을 고취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산권 보호와 경쟁을 촉진하는 규제를 제외하고는 대폭적인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어떤 규제개혁이든 더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과거 정권처럼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해놓고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된다. 1998년 도입한 ‘규제일몰제’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고, 2014년 7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시범 시행한 ‘규제비용총량제’ 역시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규제개혁위원회까지 설립했지만 규제개혁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규제가 더욱 강화됐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한 이명박 정부와 ‘손톱 밑 가시’를 빼겠다고 한 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규제가 늘어났고, 기업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곤란하다.

규제개혁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이익집단이다. 규제는 국민경제와 대부분 국민에게 해를 끼치지만 이익을 보는 집단을 만들어낸다. 그 이익집단에는 해당 규제로부터 이익을 보는 기업과 노조, 그리고 공무원 집단 등이 포함된다. 사실 과거 정부들이 규제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이런 이익집단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 없이 이익집단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규제개혁을 성공하려면 이익집단에 휘둘리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강력하게 실행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과거 정부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 발표한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의 네거티브 규제 입법,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된 이익집단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이번 규제개혁은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다. 이번 규제개혁을 비롯해 더욱 강력한 규제개혁을 추진해주기 바란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