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사용권을 둘러싼 의사와 한의사 간 해묵은 갈등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잇달아 발의되면서 찬성하는 한의사와 반대하는 의사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김명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6일과 8일 한의사가 컴퓨터단층촬영(CT), 엑스레이 등 진단용 방사선 의료장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한의사도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에 포함돼 현대 의료기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신한방의료기술평가위원회를 설치해 한방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해야 한다.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의사단체와 의사단체는 각각 찬성과 반대 성명을 내며 신경전을 벌였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자는 데 여야가 뜻을 함께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의사들이 직능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최상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의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의사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20대 국회에서 이런 법안이 발의된 것은 유감”이라며 “면허권 도전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고 했다. 의사협회는 해당 의원실에 법안 발의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한의사들은 낙후된 한의학을 발전시키고 표준화하려면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 의료기기를 통해 환자 상태를 명확히 평가해야 과학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의사들은 현대 의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오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기 사용을 시작으로 한의사들의 진료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의사와 한의사는 그동안 천연물 신약 사용권, 한방 물리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등을 두고 충돌해 왔다”며 “이들 단체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권한 논의가 본격화되면 두 단체 간 갈등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