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세계건축대회 참석차 방한한 도미니크 페로 건축가
“서울처럼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지하는 엄청난 공간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새 건물을 높게 세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64·사진)는 “이제 도시 설계는 기존의 것을 확장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파리 프랑스국립도서관,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유럽연합(EU) 대법원 청사 등을 설계한 건축가다. 지난 3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국제건축연맹(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페로는 지하를 활용한 건축 설계로 유명하다. 땅을 직사각형으로 깊게 파내고 그 자리에 건물을 집어넣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도시의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새 건물이 기존 경관과 융화되게 하려는 선택이다.

관광명소가 된 서울 이화여대의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 설계도 그런 예다. 2008년 준공된 ECC는 강의실과 자유열람실, 연구실 등을 비롯해 서점, 카페, 극장, 피트니스센터를 아우른 복합건물이다. 연면적이 6만8600㎡에 달하지만 건축 후에도 학교 지상 조망을 해치지 않았다. 지하 6층~지상 1층 건물이라 시설 대부분이 지하에 있어서다.

페로는 “지하는 어둡다는 선입견이 있어 개발이 잘 안 됐다”며 “빛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지하 공간의 활용도가 확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페로는 1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만났다. 서울의 지하공간 활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중 하나가 ‘을지로 지하보도 활성화 프로젝트’다. 을지로 지하보도 2.7㎞ 구간을 100m씩 끊어 새로운 공간 27개를 구상했다. 도서관 상가 푸드코트 공연장 갤러리 목욕탕 등으로 활용하는 계획이다.

페로는 “아직 단순한 상상이긴 하지만 서울광장이 지상과 지하 공간을 연결하는 거대한 출입구로 탈바꿈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공간이 확장될 가능성을 열어주면 주변에 방대한 부동산 가치가 새로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하 활용은 도시재생사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건물을 서로 연결하는 지하 공간을 만들고 지하 도시텃밭 등을 조성해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페로는 “도시재생은 많은 이의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