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슬람교도는 하지 외에 신조 암송, 하루 5회 기도, 빈민 구제, 라마단 금식 등 다섯 가지 의무를 진다. 평생 한 번이라도 하지에 참여하는 게 소원인 이유다. 하지를 마친 신도는 이름 앞에 ‘알 하지’를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신자는 의무 이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재력이 있어야 하고 건강도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선행으로 하지 의무를 대신하는 무슬림이 더 많다. 이슬람에서는 하지 이외의 기간에 이뤄지는 순례를 우므라(Umrah)로 달리 부른다. 종교적 의미가 하지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금식 기간인 라마단(Ramadan)과 함께 이슬람권 최대 종교 의례인 하지가 30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올해도 200만 명가량의 무슬림이 세계 각국에서 메카로 몰려들었다는 소식이다.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와 앙숙인 시아파 종주국 이란에서도 8만 명 넘게 참여했다. 사우디는 단교 상태인 카타르에 도 순례 참가는 허용했다.
하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사우디가 아닌 제3의 기구가 하지를 관장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우디가 국가별로 하지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란은 사우디가 하지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운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지의 엄청난 경제 효과를 감안할 때, 사우디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사우디 정부에 따르면 1941년 2만4000명이던 하지 순례객은 지난해에는 80개국 186만 명에 달했다. 이를 통해 사우디는 매년 10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입을 얻고 있다. 순례객 한 명당 하지에 사용한 비용이 평균 6000달러라는 KOTRA 분석도 있다.
메카 동쪽으로 5㎞ 떨어져 있는 미나 같은 도시는 하지 행사 때면 거대한 텐트 도시로 변신해 큰 호황을 누린다. 하지 행사에 참여하는 순례자 중 상당수가 임시 거처로 사용할 수만 개의 텐트가 이곳에 설치된다. 메카와 메디나의 호텔이 번성하는 것도 성지 순례와 무관하지 않다. 사우디 보석시장과 렌터카 산업도 하지에 기대어 번성하고 있다. 사우디에서 팔리는 금과 보석의 25%는 하지 순례객이 구매한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성지 순례라지만 하지에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많은 참배객이 몰리면서 대규모 인명사고가 생기기도 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