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거라곤 사람뿐인 한국에서 교육은 성장잠재력의 화수분이었다.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땅속 자원이 아님을 입증한 게 ‘한강의 기적’이다. 오바마도 부러워한 한국의 교육신화다.

요즘엔 거꾸로다. 교육이 갈등의 발전소이자, 사회 문제의 축소판이 돼버렸다. 흙수저, 개천의 용, 계층 사다리 등의 논란도 교육에 기인한다. 양극화부터 4차 산업혁명까지 교육이 안 걸리는 곳이 없다.

인구 감소는 경제뿐 아니라 교육의 문제다. 2002년부터 본격화한 초(超)저출산(출산율 1.3명 미만) 쇼크가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로 도미노처럼 번졌다. 대학도 이미 태풍권이다. 게다가 교사 ‘임용 절벽’, 교대·사대 반발, 기간제 정규직화 요구 등이 난마처럼 얽혔다. 미래는커녕 당장의 문제에 함몰돼 허덕인다.

여기에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인 ‘공교육 혁신 4종 세트’가 더해져 논란을 가열시킨다. 수능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내신 성취평가(5등급 절대평가), 외국어고·자사고 폐지를 통해 “과도한 입시경쟁, 사교육비, 교육 격차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취지야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교육의 공정과 평등을 강조했는데 역으로 불공정 시비를 초래한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교육부는 3주간 첨예한 논란 끝에 수능 절대평가 1년 유예를 결정했다. 그 과정을 보면 ‘탈(脫)원전’과 판박이다. 밀어붙이기, 졸속 추진, 당사자 반발, 이해 상충, 이념 대립…. 확 뒤집으려다가 갈등만 키운 꼴이다. 정권 지지율이 70~80%인데도 교육정책만은 35%로 뚝 떨어진 배경이다. 심지어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돌아선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교육(특히 입시)은 휘발성이 강한 이슈다. 그럼에도 정권마다 사교육 잡겠다고 입시제도에 손대는 유혹에 빠졌다. 김대중 정부 때 ‘이해찬 세대(학력 저하)’, 노무현 정부 시절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수능·논술 모두 올인)’처럼 현실에선 엉뚱한 결과를 초래했다. 대입이 인생을 좌우하는 한, 어떤 제도도 안 통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수능 개편을 미뤘다고 해서 ‘4종 세트’의 보류나 폐기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4종 세트’에는 ‘경쟁 없는 행복한 나라’라는 진보좌파의 로망이 투영돼 있어서다. ‘낙오자 없는 맞춤형 교육’이란 북유럽 모델에 꽂혀 있다. 다시 밀어붙일 것이다. 심지어 좌파 교육단체들은 수능 5등급 절대평가 및 동점자 추첨, 대학 평준화까지 주장할 정도다.

하지만 ‘경쟁 없는 행복한 나라’는 환상이자 허상일 뿐이다. 인생 자체가 경쟁이고, 언젠가는 누구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다. 입시를 완화하면 대학과 취업, 직장으로 경쟁이 이연될 뿐이다. 오히려 경쟁시켜야 승복하고 경쟁이 완화될 수 있다. 한국은 대학진학률 70%, 사농공상의 신분질서가 온존하는 밀집 경쟁사회다. 10대 초반에 진로가 결정되는 북유럽 모델이 몸에 맞을 수 없다.

용빼는 재주 없어도 자식은 용으로 만들고 싶은 게 한국 부모들이다. 선행학습의 군비경쟁도 ‘남들 다 시켜서’ 감수한다는 정도다. 그렇다고 사교육 잡기가 목표가 돼선 곤란하다. 사교육은 교육열과 정책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대입, 취업, 병역 등에서의 불공정은 누구나 분노한다. 정권 핵심 인사들이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진학시키거나 유학을 보내면서 교육 평등을 강조하는 이중성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교육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닌지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국의 지도층이 좌우 구분 없이 자신은 특별하고 예외적이라는 ‘허구적 독특성(false uniqueness)’에 빠져 있음도 확인했다.

결국 왜 교육제도를 뜯어고치려는지 원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학생 숫자가 줄수록 더 우수하고 재주 많은 정예 인재로 키워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학생의 중·고교 선택권, 대학의 선발권은 다 막아 놓고 평등만 강조해도 될까. 교육이 무너지면 미래도 없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