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대필 작가입니다.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미래에 남의 속마음을 손편지로 전하는 직업이지요. 정작 그는 사람과의 관계에 지쳐 있습니다. 지루한 삶 속에 들어온 건 물리적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 운영체계(OS), 사만다. 목소리만 있는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영화 속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어떤 장면만 놓고 보면 오래된 1960~1970년대 영화 같습니다.

주인공이 쓰고 있는 두꺼운 안경과 촌스러운 스웨터, 벙벙한 바지, 나무로 된 책상, 우쿨렐레 등이 그렇습니다. 감독은 어쩌면 그 먼 미래에도 ‘인간이 기계에 내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그런 것들 말이지요.

커피도 그중 하나입니다. 테오도르와 직장 동료들은 커피를 꼭 핸드 드립으로 내려 마십니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그런 시대에 말이죠. 5년 전 개봉한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 건 로봇 바리스타 때문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카페 엑스 테크놀러지’에서는 로봇팔이 전문 바리스타 수준으로 커피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키오스크에 있는 터치스크린을 눌러 원하는 커피의 종류와 우유, 토핑을 선택하거나 앱으로 주문하면 로봇이 알아서 커피를 내온다고 합니다. 주문에서 제조까지 걸리는 시간은 22~55초. 완성된 커피도 로봇팔이 전해줍니다. 한 시간에 100~120잔을 만들 수 있다나. 지난달 국내에도 ‘로봇 바리스타’가 등장했습니다. 다관절 로봇을 이용해 최상의 커피맛을 내도록 설계됐는데, 40~47초 정도면 커피 한 잔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요. 한 중소기업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로봇이 정말 커피 로스터와 바리스타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로봇을 개발한 과학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리스타의 일은 결국 사람이 감각과 지식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생겨나고 있는 스페셜티 커피 바를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두가 갖고 있는 제각각의 스토리, 로스팅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의 맛, 추출 기구 때문에 생겨나는 미묘한 맛의 차이까지…국내에서도 테라로사커피, 이디야커피랩, 스타벅스 리저브바 등등 대형 커피 전문점과 수많은 로스터리바가 바리스타 중심의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커피를 마셔야 하냐고 묻는 사람에겐 “같은 커피라면 다르게 마셔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0년째 핸드 로스팅을 고집하는 을지로의 한 바리스타에게 물었습니다. 로스팅의 비법이 뭐냐고. 그의 답은 이렇습니다. “답 없어. 그냥 손이 알 때까지 볶는 거야.”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