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운동장'을 기울게 만드는 것들
노(勞)와 사(使)는 기업을 움직이는 두 축이다. 생산성과 이윤을 추구하는 사와 급여 인상과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노는 대립하기 마련이다. 노사 관계가 중요한 이치이자 노동시장이라는 운동장에 정(政)이라는 심판이 존재하는 이유다. 공정한 경기가 진행되려면 ‘평평한 운동장’이 중요하다.

보수에서 진보로,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뀌면 노·사·정 가운데 주요 변수가 되는 것은 정(政)이다. 조각이 마무리되며 정의 모습도 드러났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출신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정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취임했다. 노사정위의 내부 의견을 조율하는 상임위원으로는 노동계에서도 급진적으로 알려진 박태주 전 고용노동연수원 교수가 위촉됐다. 정은 과연 운동장의 수평계 역할을 할 것인가.

조대엽 후보자 낙마로 고용부는 다른 부처에 비해 장관 임명이 다소 늦었다. 그래서인지 김영주 장관은 부임 이후 노동정책을 발빠르게 내놓고 있다. 논점은 정책의 수평계 역할 여부로 모아진다. 김 장관은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구성원의 50%를 외부 인력으로 채우는 태스크포스(TF)팀 구성을 지시했다. 노동개혁과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해온 고용부 관계자들은 전전긍긍이다. “노동계가 촛불 시위, 대통령 탄핵, 대선 등에서의 역할을 내세워 지분을 요구하고 있는데 결과는 뻔하다”는 예상이 나오는 터다. 양대 노총 산하 장기 투쟁사업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고용부 차관과 양대 노총 간에 각각 개설한 핫라인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노사 갈등이 첨예한 장기 투쟁사업장 문제를 논의하는 노·정 간 핫라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울기를 가파르게 만들 수 있다.

기울기 못 고치면 미래도 없어

사측의 입지는 부쩍 좁아지는 형국이다. 적폐 청산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인식 탓에 산업계 목소리는 들리지 않은 지 오래다. 노사정위 운영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김 장관이 부임 이후 가장 먼저 방문하려고 한 경제단체는 대한상공회의소다. 노사정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온 곳이 한국경영자총협회였음에 비춰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일자리 속도조절론을 꺼냈다가 청와대로부터 호되게 질책받은 경총을 대신 하려는 것” “대한상의가 전국경제인연합회나 경총에 비해 대기업 입장을 덜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문 위원장이 취임하며 강조한 ‘격차 해소론’도 사측의 팔과 다리를 묶는 모양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기업 유노조 직원과 납품 중소기업 무노조 직원 간 격차 해소는 결국 제품 최종 단계를 담당하는 대기업의 몫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10% 안팎인 노조 조직률을 뒷받침하는 사업장의 상당수가 대기업임을 감안하면 ‘격차 해소’는 결국 ‘사측 압박’으로 치환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폐해는 곧 드러날 수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그렇다. 기업 경쟁력 약화는 물론 근로자 급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한쪽 목소리만 높다. 당위성에 매몰돼 임금피크제 의무화 등 선결 과제를 나몰라라 했고, 그래서 청년실업 등 미래 세대의 부담을 잉태한 ‘정년 60세법’과 판박이처럼 흘러가고 있다. 운동장은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운동장의 기울기를 생산성과 지속 발전 가능성을 수평계 삼아 바로잡아야 한다.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