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누가 금융소비자를 배신했나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도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기에 바쁘다. 기존 은행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벌써부터 인터넷은행을 향한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게 이를 말해준다.

1400조원에 육박한다는 가계부채를 끌고 들어오는 것부터 그렇다. 인터넷은행이 대출을 확대해 부채를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부채의 질은 둘째 치자. 인터넷은행이 타깃으로 한 중(中)신용자가 제2금융권, 대부업 등에서 돈을 빌렸으면 더 증가했을 부채 아닌가. 보안을 들먹이며 소비자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도 뜬금없다. 비(非)대면이라고 인터넷은행 맘대로 한다면 또 모르겠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실명인증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비대면이다. 오히려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이 사고 발생 시 책임지지 않을 목적으로 고집하던 공인인증서를 보란 듯이 날려버렸다.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 부실화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대로 가면 기존 은행이 더 걱정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노인 등 소외계층이 이용하기 쉽지 않다고 꼬투리를 잡지만, ‘원격금융’은 정보격차를 해소할 촉진자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간편 대출 때문에 대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전전긍긍한다는 말까지 지어낸다. 그건 경제교육의 문제다.

그동안 “기존 은행이 인터넷은행을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 시민단체가 적지 않았다. 인터넷은행은 1995년 미국이 최초로 도입한 뒤 유럽 일본 중국 등으로 번져나갔다. 그 사이 한국 은행들은 변화다운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던 은행이 정보기술(IT) 경쟁자 출현에 허둥대는 모습이다. 비대면 전용상품 출시, 고객 맞춤형 우대 대출, 적금 금리 인상, 수수료 인하, 공인인증서 대체 등 하루가 다르게 대응책을 내놓는다. 이제야 금융소비자가 눈에 보이는 건지. ‘카니발라이제이션(carnivalization)’ 등 자기 파괴적 혁신은 담합에 익숙한 한국 은행들엔 처음부터 기대난망이었다는 방증이다.

공범이 있다. 2002년, 2008년 한국에서 인터넷은행 설립 기회를 무산시킨, 정치권의 ‘은산분리’ 원리주의자들이다. K뱅크, 카카오뱅크는 은산분리 완화를 전제로 출범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에 반대했다. “은산분리는 당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민주당이 집권했으니 달라질까.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엔 은산분리나 인터넷은행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무엇으로 금융혁신 인프라, 중금리 대출시장 활성화를 추진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은산분리 옹호론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건 ‘재벌 사금고화’ 방지다. 그런데 그 결과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과실을 빼앗아 성과급 잔치나 벌이는 약탈적 금융이라면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누가 ‘금융노조 사금고화’와 ‘재벌 사금고화’의 차이를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 여당 일각에서는 “점포 없이 중금리 대출을 해준다면 고용효과가 전혀 없다”는 말도 한다. 기존 은행의 과잉인력을 먹여살리려고 소비자가 존재한다는 건가.

은산분리라는 법적 불확실성 해소는 뒷전인 채 제3 인터넷은행 검토 등 실적내기에 혈안인 금융위원회도 수상쩍다. 자본확충의 길을 빨리 열어줘 비금융사업자가 제대로 혁신을 시도할 수 있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금융위도 기존 은행, 금융노조와 한패나 다름없다. K뱅크, 카카오뱅크에 참여한 기존 금융사들이 여차하면 인터넷은행을 잡아먹을 ‘트로이 목마’란 얘기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혁신은 늘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쪽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 ‘소비자 혁명’이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금융이 은산분리라는 공급자 관점의 규제에 갇혀 있을 것인지, 소비자 관점의 혁신으로 탈바꿈할지 기로에 섰다. 인터넷은행 반대론자들은 내심 대형사고 발생을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규제보다 더 무서운 건 깨어 있는 소비자다. 소비자 혁명으로 한국 금융을 확 바꿀 때가 왔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