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금마에' 명함에 CEO라고 적힌 까닭
“도와주십시오. 어떻게든 오케스트라를 살리고 싶습니다.”

1992년 지휘자 금난새(사진)는 수원시립교향악단 사무국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2년째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던 그는 이 전화에 돌연 사표를 내고 수원시향으로 향했다. KBS교향악단은 얼마든지 훌륭한 지휘자를 데리고 올 수 있었지만 존폐 기로에 선 수원시향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마을] '금마에' 명함에 CEO라고 적힌 까닭
수원시향 상임지휘자가 된 뒤 그는 이듬해 갑자기 단원들과 함께 수원시 시무식에 나타났다. 시무식이 열리는 강당 옆에서 새해를 시작하는 공무원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선사한 것이다. 내부 고객을 먼저 감동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예고도 없이 펼쳐진 클래식 향연에 직원들은 크게 감동했다. 이뿐만 아니다. 2시간이 아니라 6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연주회도 기획했다. 그의 열정적인 지휘에 1000여 명의 청중은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고 큰 박수를 보냈다. 애호가들의 호응을 얻자 수원시향의 공연은 잇따라 매진을 기록했다.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가져온 결과물이었다.

《CEO 금난새》는 지휘자 금난새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접목한 다양한 경영 비법을 소개한 책이다. 금난새는 현재 한경필하모닉, 뉴월드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인 동시에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예술총감독을 맡고 있다. 공연마다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 클래식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금난새는 스스로를 지휘자라기보다 CEO라고 생각한다. 명함에도 ‘지휘자 금난새’가 아니라 ‘CEO 금난새’라고 적고 있다. 금난새는 책에서 “음악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클래식 시장을 광범위하게 개척해 인류에 공헌하고 싶다”며 “이런 바람과 의지는 지휘자를 넘어 CEO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그는 “연주자들이 기대감과 자신감을 갖도록 도우면 좋은 연주가 나오고 객석도 가득 찬다”며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거대한 조직을 갖춘 기업의 CEO도 이런 태도로 최고의 마에스트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만의 일곱 가지 경영 지침도 소개한다. 먼저 신나게 즐기고 과감하게 도전하며, 상상력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재치있는 클래식 해설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할 땐 베토벤의 가난을 연상하는 식이다. 도입부의 “빠바바밤~”에선 관객들에게 집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고 제안한다. “한번 떠올려 보세요. 집주인이 돈을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사이 방 안에서 베토벤은 돈이 없어 고민하고 있겠죠.” 그 순간 어려워 보이던 클래식 음악은 쉽고 친근하게 청중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또 경영엔 소통과 융합, 나눔이 필수라고 한다. 그는 “한경필하모닉의 현악 연주자 열한 명으로 구성된 ‘한경신포니에타’와 독일 등에서 공연을 하며 기부 활동을 펼쳤다”고 전했다. 클래식의 본고장 독일에서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남다르다. 그는 “항상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것도 CEO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