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병원은 종종 보험 사기의 무대로 활용된다. 광주·전남 지역에는 전국 한방병원의 49%인 138개가 밀집해 성업 중이다. 보험업계의 불편한 시선도 일리가 있다. 보험업계는 지역별 보험사기 현황을 가격(보험료율)에 반영하고자 하지만 보험당국은 좀체 허용하지 않는다. 관련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고율과 가격은 괴리된다.

대체로 전통적 유대의식이 강한 곳에서는 보험업이 발달하기 어렵다. 배타적 연대의식은 개인의 책임 소재를 가려 이를 가격으로 매기는 것에 대해 저항한다. 일가족 4명이 9년간, 그리고 동네 주민 21명이 집단으로 보험사기를 쳤다는 특정 사례들은 불행히도 계속될 것 같다. 물론 잘못된 제도와 낙후된 검증시스템이 사기 위증 무고 등 거짓말 범죄를 부추긴다. 사법(私法)의 공법화와 모든 경제활동의 형사범죄화는 이 현상을 나선적으로 강화한다. 대중 민주주의 붐을 타고 유독 한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기세를 부린다.

정부라는 존재, 국가라는 구조물은 필시 개인의 도덕·윤리 의식을 파괴한다. “돈은 네가 내라, 그러면 우리가 쓰겠다”는 말은 조폭이나 하는 말이다. 그러나 집단을 만들거나 그 집행자가 국가나 정부이기만 하면 누구라도 공공연하게 그 말을 한다. 한국에서는 그게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에는 당신이 아니라 바로 ‘너의 돈’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돈다. 그게 바로 ‘핀셋 증세’라는 언어에 내포된 논리다. 핀셋 증세라는 말은 그 자체로 범죄적이요, 처분적 법률을 금지하는 헌법에도 저촉된다.

증세 법률이 국민 다수가 아니라 특정한 ‘바로 저놈’에 대한 것이라면 이는 위헌이다. ‘부자증세’라는 논리는 일견 정의로운 것 같지만, 실은 나 아닌 다른 자의 돈을 노린다는 점에서 부도덕하고 불의(不義)하다. 빈곤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시선을 유지했던 스웨덴의 노벨상 수상자 군나르 뮈르달이 “과도한 세금이 스웨덴 사람들을 협잡꾼(swindler)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기에 이른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돈 앞에서 비굴해지고, 또 어떤 사람은 약탈자적 분위기를 풍긴다.

정의로운 세금이라는 상속세가 그런 대표적인 경우다. 상속세는 평생의 근검절약을 처벌하고, 세금 내고 모은 돈을 또 국가가 강탈한다는 면에서 악(惡)의 세금이다. 결국 부자들에 대한 은폐된 질투와 분노다. 많은 나라가 상속세를 폐지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한국에서 대기업을 상속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65%의 약탈적, 아니 악질적 세금을 낸다. 이런 세제는 대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국유화 기제로 작동하게 되고, 승계자를 범죄자로 만든다. 한국의 상속세 세수 비중(1.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0.34%의 무려 네 배다.

법인을 부자와 구분하지 못하는 낙후된 의식구조도 문제다. 이는 국토를 신체로 인식하는 낡은 의인화적 지리관과 다를 바 없다. 조선의 양반들은 한반도가 중국에 대해 읍을 하고 있는 자세라고 가르치고 배웠다지 않은가(이중환의 택리지). 대기업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의인화 사고 체계는 법인세를 소득세처럼 기형적 다단계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이런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국가가 끼어들다 보니 사람들이 뻔뻔해진다.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세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맞지만 한국의 부가가치세는 선진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대신 대부분 재원을 고소득자들이 부담한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수의 90%를 내고, 소득세 한 푼도 안 내는 근로자 비중이 46.8%로 세계 1위다. 기업도 세금 한 푼 안 내는 곳이 47.3%다. 세금 한 푼 안 내는 사람이나 기업들이 광장을 차지하거나 집단을 만들면서 더 큰 목소리를 낸다.

문재인 정부가 선심 쓰며 내놓은 건강보험도 그렇다. 고소득자는 보험이 아니라 6%가 넘는 소득세 건강보험분을 낸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이런 가파른 누진적 보험료 체계는 세계에 없다. 문제는 아무도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색은 정부와 정치가 독점한다. 좌익의 문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도덕심의 파괴다.

정규재 논설고문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