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인이 국제정치 부문에서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각에선 1928년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중동에서 석유 개발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도에 빨간선을 그어 경계를 나타내던 ‘레드라인 합의’에서 어원을 찾기도 한다.
북한 문제와 관련,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이다. 그해 8월 북한은 대포동 1호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넘어 1500㎞가량 날아가 태평양에 떨어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한 양강도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도 제기되면서 한반도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미국은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고, 북한 핵·미사일 해결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때 나온 게 ‘페리 보고서’다.
이 보고서엔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과 봉쇄정책을 나누는 기준인 레드라인이 등장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는 핵 개발 활동을 하거나, 중·장거리 미사일을 다시 발사하거나, 대규모 대남 무력도발을 반복적으로 할 경우 등을 레드라인으로 정했다.
레드라인은 외교적 수단에서 비외교적 수단을 택하게 되는 전환점을 뜻한다. 군사적 대응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페리 보고서’의 레드라인이 무너진 지 오래됐다. 북한은 이후 다섯 차례 핵실험을 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까지 이르렀다. 국제사회는 제재에 나섰지만, 북한의 야욕을 꺾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레드라인에 대해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미사일은 완성됐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북한은 이미 ‘대남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비상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문 대통령의 안보관이 안이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지키지도 않을 레드라인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코앞에 다가왔다. 레드라인 기준을 두고 우리끼리 공방하기보다 매순간을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단합해 강력하게 대처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