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범람해 곳곳 물바다되고 시내 곳곳에 시신 방치
미흡한 구조·복구작업에 주민들 분통…추가 산사태·전염병 우려도


14일(현지시간) 집중호우에 따른 대규모 산사태로 400명이 숨지고, 600명이 실종된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리젠트 지역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다.

산비탈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주민 수백 명이 살던 마을은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거대한 골짜기로 변했고, 산산조각이 난 건물 잔해가 흙더미 위로 간간이 형체를 드러냈다.

계속된 폭우로 강은 범람해 인근 지역은 물바다가 됐고, 물에 잠긴 주택 지붕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시신을 바라보는 모습도 포착됐다.

영국 가디언은 15일 현재 리젠트 거리 곳곳에 시신이 방치됐고, 가족을 잃은 시민 수백 명이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거나 울부짖고 있다고 전했다.

아들과 조카가 실종된 이사투 카마라는 "집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었다"며 "왜 우리가 저주받았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한탄했다.

그는 "진흙이 물과 함께 빠르게 밀려들어 왔지만 내 아들은 탈출하지 못했다"며 "우리는 흙더미에서 어린 아들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사람들이 아이의 시신을 어디로 가져갔는진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특히 사고 당시 잠을 자던 주민 수백 가구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흙더미에 깔린 터라 복구작업이 진행될수록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시에라이온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교회 한 곳이 진흙더미에 파묻혀 그 안에 있던 60여 명이 한꺼번에 숨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번 산사태가 최근 20년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재해 중 최악의 참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구조·복구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자원봉사자들이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내 생존자를 구조하거나 시신을 꺼내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구호작업을 돕던 인근 주민 소리 방구라는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온종일 흙더미를 파고 있지만, 인원이 충분치 않아 소용이 없다"며 "어떤 집은 통째로 파묻혔는데 (구조를 위해선) 장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곳곳에 시신이 있지만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직 구조를 기다리는 집이 많지만, 모두를 구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구조·복구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시에라리온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시에라리온 대통령은 "지금 우리나라는 긴급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국제사회에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국제사회의 도움만을 바라며 구조에 손을 놓고 있는 정부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특히 당국이 사고 당시 폭우경보도 발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 베란다에서 밤을 보낸 아비바투 카마라는 "재난이 발생한 어제부터 음식이나 담요 등 구호물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질타했다.

하지만 적십자사 등 구호단체들은 그치지 않는 폭우와 시에라리온의 열악한 배수시설로 인해 추가 재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프리타운은 배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마다 홍수피해를 입었다.

산사태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겨 장티푸스나 세균성 이질,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적십자사는 "이곳에서 장티푸스와 콜레라와 같은 질병이 발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 방구라도 "지금이 우기라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다.

내 가족이 다음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라며 "추가 재해를 막을 길이 있겠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viv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