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청와대 탈원전 논리가 이거였나
아무리 대선공약이라지만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에 이토록 에너지를 소모하는 이유가 뭘까. 탈원전 공론화도 아니고 멀쩡히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 중단 문제로 직행하는 극단적 의사결정은 또 어떻게 나온 것인가.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한 언론 매체와 했다는 인터뷰가 눈길을 끈다. 김 보좌관은 탈원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먼저 원전 안전성 문제다. 만에 하나 수천분의 일이라도 이게 발생하면 한국 경제가 거덜난다. 백만분의 일이라도 발생하면 한국은 끝난다. 한국 경제 60년간의 성과를 한방에 날릴 수 있다. 또 하나는 산업 재설계다. 지난 60년간 우리의 축이 석유, 자동차, 원자력, 철강, 전력 등 장치산업이었다. 신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전기차 등 신산업에 얽혀 있는 게 모두 에너지와 관계된 거다. 최첨단으로 바꾸려면 에너지원을 다 바꿔야 한다.” 영락없는 환경론자 주장 같다.

백보를 양보해 김 보좌관의 위험인식을 이해하더라도 이 시각은 편향적이다. 원전사고가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으나 잠재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X이벤트’일 수는 있다. 하지만 에너지에 관한 한 ‘섬’이나 다름없는 한국으로선 에너지 안보 붕괴도 X이벤트이긴 마찬가지다. 탈원전으로 질주하다 대규모 블랙아웃, 전력망 붕괴, 에너지 위기, 전기요금 급등 등이 발생해도 한국 경제는 거덜난다. 정부가 전력예비율까지 낮추는 마당이니 확률로 치면 어느 쪽이 더 클까. 범위를 넓혀 원전사고와 북핵 등 안보 위기로 인한 경제 붕괴 가능성을 따지면 어느 쪽이 먼저일까.

정부가 원전사고를 걱정한다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공론화 대상으로 삼은 것도 모순이다. 신고리 5, 6호기와 같은 제3세대 원전은 과거 원전보다 10배 이상 안전성이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잘못하면 나라가 끝날지 모른다면서 가장 안전한 원전부터 손댄다는 게 말이 되나.

탈원전을 해야 신재생, 신산업이 된다는 논리도 황당하다. 원전을 죽여야 신재생이 산다고 여기는, ‘원전마피아’ 못지않은 ‘환경마피아’의 극단적 주장을 그대로 차용한 느낌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한다고 여당이 격려 논평까지 낸 삼성전자 하나만 해도 원전 1.5기 정도의 전력이 필요하다. 전기자동차는 물론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을 구동할 전기는 어디서 조달하나. ‘규제 불확실성’에 ‘에너지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신산업이 과연 가능할까. 경제보좌관이 ‘이상’과 ‘현실’, ‘강의’와 ‘정책’을 혼동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더 중요해질 안정적이고 풍부한 전력 공급에 입을 다물 수는 없는 일이다.

산업 재설계를 위해 에너지원을 다 바꾸겠다는 것도 그렇다. 정부가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만약 그런 구상을 하고 있다면 먼저 이 정부가 생각하는 산업에 대한 큰 그림부터 내놓는 게 순서에 맞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은 딴판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에 소홀하다는 경제보좌관 질책에 허둥대고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원전 연구개발(R&D)을 덜어내느라 분주하다.

이게 다 김 보좌관 탓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엘리트 집단조차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는 ‘집단사고이론’은 유명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는 응집력이 있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비판적 의견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한다. 마이어와 램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이면 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더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환경론자들이 점령군처럼 행세할 때 이미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인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의사결정은 늘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지금도 늦지 않다. 혹여 청와대나 정부 또는 여당이 출구를 모색한다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탈핵·탈원전이라는 정치적·이념적 도그마가 문제이지 ‘에너지 포트폴리오 조정’이나 ‘에너지원 다양화’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