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위기 리더십이 발휘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의 한 장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위기 리더십이 발휘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 ‘덩케르크’의 한 장면.
1940년 5월27일, 프랑스 북부의 조그만 항구도시 덩케르크에서 영국군 철수작전이 시작됐다. 영국·프랑스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 40만여 명은 파죽지세로 진격해오는 독일군에 밀려 덩케르크에 갇혀버렸다. 포위된 병력이 이대로 궤멸하면 전세는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빠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국민에게 상황을 솔직히 알리고, 가용한 모든 선박의 동원령을 내렸다. 영국 국민은 이에 적극 부응했다. 요트와 어선 등 작은 배들까지 독일 공군 폭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덩케르크 해변으로 향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연합군 33만8000여 명이 영국 본토로 무사히 탈출했다.

[책마을] 위기 경영의 교과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보라
이건창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위기 경영 이야기》에서 위기 리더십의 한 사례로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소개한다. 이 교수는 ‘위기에서 초래된 부정적인 감정의 전이 현상’을 의미하는 ‘씨넥(CINEC)’이란 개념을 통해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는 스스로 씨넥을 촉발시켜 위기 상황에 처한 조직을 혼돈과 불안에 빠뜨리는 반면, 준비된 리더는 같은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조직에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끝난 6월4일, 처칠은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We shall fight on the beach)”로 시작되는 유명한 연설을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젊은 영국 군인이 기차 안에서 소리 내어 읽는 신문 기사 내용이다. 처칠은 “그 어떤 경우라도 항복은 있을 수 없으며, 그 희생이 얼마가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끝까지 싸우겠노라”고 천명했다. 이 연설은 영국 국민에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했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됐다. 이 교수는 “위기가 닥쳤을 때 리더가 취할 첫 번째 액션은 단호한 의지로 명료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고대 로마 등 역사 전면에 등장한 제국의 흥망사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수많은 전쟁 등을 ‘위기 경영’의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저자가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나라는 패망의 기록이 자세하고 생생하게 남아 있는 비잔틴(동로마) 제국이다.

비잔틴 제국은 1453년 5월29일 오스만튀르크 술탄 메메드 2세에 의해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까지 약 1000년간 유지된 제국이다. 이 제국에 불안의 전조가 드리운 것은 1072년 셀주크튀르크와 맞붙은 만지케르크 전투에서 패배해 제국의 젖줄인 아나톨리아 지역을 상실하면서부터다. 기업으로 치자면 경쟁 기업과 비교되는 차별화의 원천인 핵심 역량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잔틴 제국에 기회는 있었다. 남은 영토를 기반으로 알뜰하게 살림하고 국경 수비를 단단히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제국 리더들에겐 국제 정세에 대한 식견과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이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내부 권력 다툼에만 몰두해 셀주크튀르크를 이은 오스만튀르크에 유럽 진출 명분을 제공하며 경쟁력의 기반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경영자에게 위기란 늘 대비해 둬야 할 대상이다. 비잔틴제국 경영자들은 일찍이 오스만튀르크가 몰고 올 위기를 알고 있었음에도 결정적인 대응책이나 전략을 세우지 않았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의사 결정이 요구되는 위기의 순간에 우유부단한 처신으로 허둥대며 위기 극복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저자는 비잔틴제국의 멸망 과정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을 수 있는 위기 경영의 요체를 코닥, 노키아, 야후 등 현대 기업의 다양한 ‘실패 경영’ 사례와 함께 분석한다. 이들 기업은 비잔틴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핵심 역량을 놓치고, 위기 전략도 부재했으며, 과거의 관성에 의존해 변화를 거부하거나 절호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시장에서 도태되고 사라졌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위기 리더십’의 실천 요강을 제언한다. △단순화의 법칙을 기억하라 △위기 경영 전략은 이해 관계자의 조직적인 저항을 이겨낼 정도로 과감해야 한다 △위기 극복 전략은 현실적이고, 단계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기존 사업의 틀로 극복할 수 없는 ‘악성 위기’일 때 기존 시장에서 탈출하라 △‘최후의 날(doomsday)’ 시나리오를 작성하라 등이다.

저자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과 기업 성패 사례들을 명확한 논리와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위기 경영의 요체를 설명한다. ‘위기는 예측되고 통제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매우 엄혹한 상황에 처해 있고, 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위기이든 아니든, 기업은 늘 위기에 대비해야 하며 위기에 강한 경영을 늘 실천하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