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상대 여론전도 공들여…北中 양자회담 여부도 관심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이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하면서 회의 기간 그가 보일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임계치'에 근접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로 북핵 정세가 중요한 변곡점을 맞은 시점에 북한 최고위 외교관이 직접 다자외교 무대에 나섰다는 점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전날 평양을 출발, 중국 베이징(北京)을 경유해 마닐라로 향한 리용호 외무상은 7일 열리는 ARF 연례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핵 문제 및 역내 정세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그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안보 협의체인 ARF를 핵·미사일 개발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는 데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연쇄 시험발사 성공으로 미 본토를 위협할 핵 능력을 갖게 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에 이른바 '적대시정책' 전환을 압박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ARF 개막을 앞두고 도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신규 대북제재 결의도 미국의 적대정책 일환이라며 비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합동군사연습을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대표단은 ARF 회의 결과를 집약하는 의장성명에 이 같은 자신들의 논리를 반영하기 위해 의장국 필리핀을 비롯한 참가국들을 상대로 치열한 물밑 교섭을 벌일 전망이다.

최근 북한은 평양에서 북한 주재 아세안 국가 외교관들을 불러 '정세통보 모임'을 열고, 최희철 외무성 부상을 필리핀에 파견해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등 아세안에 대한 여론전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잇단 핵·미사일 도발과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악화한 역내 국가들의 대북 인식을 고려하면 이런 북측 주장이 호응을 얻을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올해는 미국이 북한의 ARF 참가국 자격 중단을 거론할 정도로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북압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리 외무상이 대북압박과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러의 이견을 활용해 한미일과 북중러 간 외교적 '틈벌리기'를 시도할 가능성은 있다.

이와 관련해 리 외무상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양자회담을 할지도 관심사다.

한중 간 사드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 열린 지난해 ARF에서 왕이 부장은 리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고 노골적으로 친근감을 과시한 바 있다.

이번이 첫 ARF 참석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는 경색된 북미관계, 남북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 등으로 미뤄 공개적인 접촉이 있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리 외무상은 이번이 두 번째 ARF 참석이다.

지난해 ARF '데뷔전'에서는 과거 북핵협상 일선에 나섰던 이력을 바탕으로 공세적인 외교 스타일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됐으나,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분위기 속에서 그다지 활발한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조선중앙통신이 리 외무상의 출국 목적을 '필리핀에서 진행되는 아세안지역연단상회의(ARF의 북한식 표기) 참가'라고만 밝힌 것으로 볼 때 동남아 여타 국가를 순방하는 일정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잡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