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지원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달 말까지 공공부문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 21조7000억원어치(123만1000명)를 소각하는 데 이어 민간부문 연체채권 4조원(91만2000명)도 자발적 소각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이달 말께 대규모 빚 탕감 정책도 내놓는다.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 대부업체의 소액·장기 연체채권을 없애준다는 방침이다. ‘빚 추심’ 공포에 시달리는 연체자의 부담을 덜어줘 재기를 돕겠다는 게 정책 취지다.
빚 탕감 대상자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미정이다. 일각에서는 수십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국민행복기금 소액·장기 연체자(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만 40만3000명이다. 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공공기관이 보유 중인 장기 연체채권도 21조7000여억원, 채무자 수는 28만1400여 명이다. 대부업체에 빚을 진 장기 연체자는 파악조차 안 된다. 어림잡아도 수십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엄밀하게 따져본 뒤 정말 상환 여력이 없는 채무자만 대상으로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빚 탕감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선다. 빚 탕감 정책이 필요하다는 쪽에서는 “소액 장기 연체자는 사실상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계층”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채권 추심 공포에서 벗어나 새 출발하게 도와주는 게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빚 탕감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탕감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 채무자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고, 중장기적으로 ‘빚은 안 갚아도 된다’는 인식만 심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찬성 장기연체자 대부분 변제능력 없어…빚 부담 없애 재기 돕는 게 낫다 금융사들 무차별 대출 관행 개선시킬 것
정부는 25조7000억원에 달하는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하기로 했다. 214만3000여 명이 혜택을 본다고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언급한 “상환 능력이 없는데도 장기간 추심 고통에 시달린 취약 계층의 재기를 돕겠다”는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지만 이는 기우다.
장기 연체자의 채무 탕감은 인권을 지키는 일이다. 이들은 단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인간적 추심에 노출돼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음으로 내몰리기까지 하는 비정한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압도적 다수는 자산과 정보가 부족한 경제적 약자로서 불운한 희생자일 따름이다. 어느 누구도 경제적 궁핍과 불운 때문에 인권을 유린당하고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겨서는 안 된다.
채무에 짓눌린 사람을 그 부담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강도 높은 채권 추심에 노출되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워진다. 설사 경제활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노력의 대가를 궁핍한 본인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기보다 채무 상환에 쓴다면 어려움을 이기고 열심히 노력할 유인이 사라지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런 ‘채무 후유증’이 초래하는 인적 자원 낭비를 방치하는 것보다 채무 탕감으로 채무자의 재기를 돕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물론 채무 탕감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우려가 존재한다. ‘버티면 탕감되겠지’라는 생각이 만연함으로써 채무 불이행을 조장하고, 이 때문에 금융거래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문제가 실제로 나타날지는 탕감 대상이 어떻게 정해지는지에 달려 있다. 채무 변제 능력이 있으면서도 갚지 않고 버틴 사람의 채무는 당연히 탕감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 그런데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것은 이미 변제 능력이 없다는 것이 상당한 정도로 검증됐음을 의미한다. 또 정부가 재산 조사까지 한다고 하니 도덕적 해이 문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액 장기 연체자의 압도적 다수는 일부러 빚을 갚지 않고 버틴 것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 빚을 갚지 못한 것뿐이며 대부분 이를 매우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는 원금 이상의 금액을 이미 변제했으나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장기 연체자가 되기도 한다.
채무자에게 변제 의무가 있다면 채권자에게는 신중한 대출의 의무가 있다. 채무자가 갚을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잘 판단해 돈을 빌려줘야 한다. 이런 신용평가 능력은 금융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적인 역량이다. 채무 탕감이나 최고금리 인하, 과도한 추심 제한 등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금융회사의 신중한 대출을 유도하고 신용평가 능력을 제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채무자 권리 보호 강화가 자칫하면 제도권 금융회사의 서민 금융시장 회피를 조장해 서민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두 가지 대책이 필요하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는 중금리 대출이 제공되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며, 만성적으로 생활비가 부족한 경우에는 금융이 아니라 고용과 복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복지서비스를 확충해야 한다. 서민이 당장 생계가 어려워 갚을 수도 없는 빚을 냈다가 끝 모를 고통의 나락에 빠지는 일은 애초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대 부채 경감 아닌 '100% 탕감' 처음 "나도 버텨볼까" 도덕적 해이 불러 열심히 빚 갚는 채무자와 형평성 논란
돈벼락을 맞으면 그만큼 세금을 내야 하지만 빚을 탕감받으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가장 큰 횡재는 빚 탕감이다. 빚 탕감은 중독성이 강한 ‘사회적 마약’일 수 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정책당국이 큰 결단을 내렸다. 금융공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소멸시효 완성 채권 25조7000억원을 연말까지 소각하기로 했다. 내용을 보면 국민행복기금 5조6000억원, 금융공공기관 16조1000억원, 민간 금융회사 4조원으로 총 214만3000명이 1인당 1199만원씩 부채 탕감 혜택을 본다. 채무자의 빚 기록이 금융 전산시스템에서 삭제돼 장기 연체와 추심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금융거래도 재개할 수 있다.
정책당국의 논리는 간명하다. 회수율이 지극히 낮은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왜 굳이 들고 있느냐는 것이다. 금융 약자를 포용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빚 탕감의 명분은 늘 그럴듯하다. 하지만 짚어봐야 할 게 있다. 과거에도 ‘빚을 줄여준다’는 공약과 정책은 있었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 빚을 100% 탕감한 적은 없었고 빚을 줄이더라도 ‘친(親)시장적’으로 접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때 농가부채 탕감이 아니라 ‘경감’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집권 후에는 상환 연장과 이자 감면에 그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720만 신용 대사면’을 공약했지만 실제 정책에선 한걸음 물러나 3000만원 이하 연체자 72만 명의 이자 감면을 대상으로 삼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행복기금’을 세워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부채를 최대 90% 탕감했다. 하지만 100% 탕감이 아니기에 최장 10년 동안 분할상환해야만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채권자인 은행 등이 주주로 참여해 설립한 상법상 주식회사다.
완전 빚 탕감에서 우선 고려사항은 ‘형평성’이다. “사전에 약정에 따라 열심히 빚을 갚은 사람은 뭐냐”는 원초적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행복기금은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 연체자지만 약정을 맺고 감면받은 빚을 갚은 채무자가 이미 83만 명에 이른다. 100% 부채 탕감 정책은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이더라도 형평성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정부가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려면 국민 세금이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세금 투입이 정당화되도록 부채 탕감 대상을 정밀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대부업체’를 포함시킨 것은 긍정적이다. 서민이 가장 고통받는 악성 빚이 대부업체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대부업체의 장기 연체채권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권채무 현황을 파악하지 않은 채 빚부터 탕감해주겠다는 것은 졸속정책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민간은행까지 대상을 넓힌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 올해 말까지 4조원을 소각할 예정이다. 그동안 민간 금융회사들은 시효 연장, 포기, 소각 등 연체채권 관리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시행해왔다. 차제에 민간 금융회사들이 협의해 ‘가이드라인’을 정해 자율 처리하도록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4조원 소각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돼야 한다. 그리고 부채 탕감 상한선을 둘 필요가 있다. 현재 1인당 탕감 규모가 1199만원이다. 예컨대 500만원이 넘는 채무 탕감은 약자 보호와 무관하다. ‘금융 약자를 포용할 것인가, 아니면 도덕적 해이를 막을 것인가’ 선택에서 금융시스템의 강건성을 위해선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부채 탕감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건 사공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기 말만 말이다’ 해서 그래요. 상대가 누구든 몸을 낮추고 귀 기울이면 버릴 말 하나 없어요. 귀만 열어둬도 분명 더 좋은 곳에 도착할 겁니다.”가끔은 드라마가 더 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드라마 시티홀의 한 장면에서 말단 공무원이 시장이 돼 돌아왔을 때 시의회 의장이 조언을 건네는 장면을 보고서 나는 묘한 기시감에 빠졌다.그 기시감의 뿌리를 오래전 기억에서 찾았다.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야 했던 그때, 그날들의 기억.당시 나는 평범한 가정의 아내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녹색 어머니회 활동을 하면서 꼬박 9년, 아이들과 통학을 함께했다. 그렇게 학교와 지역의 일을 소소하게 돕던 그때, 통보 하나가 떨어졌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가 하루아침에 국립에서 공립으로 전환된다는 교육부의 방침이 내려진 것이다. 행정 편의에 따라 이뤄진 일방조치였다. 방침 하나로 공교육의 산실인 학교를 허물어지게 둘 수 없었다. 부당함을 전달하려면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방을 뛰어다니다가 지역 국회의원을 만났다.내 말을 들어준다고 해서 문제가 당장 풀릴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이게 내가 느낀 첫 정치의 효용감이었다. 나는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 정치의 필요를 발견했다. 그렇게 평생 무관할 것 같았던 정치가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이후 정치를 돕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주저했다. 과연 정치가 내 일이 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자문했다. 그때 그날 내가 경험한 정치의 효용을
세계를 놀라게 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혁명이 시작된 지 2년여가 지나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AI 패권전쟁이 점입가경이다. AI는 이제 국가와 기업의 미래 명운을 좌우할 핵심 전략기술로 부상했다. 시장 지배력과 물적·인적 자원에서 절대적 열세인 한국으로서는 무모한 전면전보다 우리의 강·약점, 기회·위협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반을 둔 현명하고 실속 있는 국가 AI 전략이 시급하다. 일본 대함대를 대양이 아니라 좁은 울돌목에 끌어들여 대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과 같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결론적으로 한국의 AI 전략은 철저한 ‘선택과 집중’이어야 한다. 우리의 강점 분야에 집중해 세계 최고 수준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협력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정부 부처나 산학연 각계 전문가 그룹은 자기 분야를 앞세우는 이기주의와 모두 하겠다는 무모한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 AI 전략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미국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중국 딥시크의 량원펑 최고경영자(CEO)의 선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AI 역량을 가진 중국도 자국 특유의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AI 전략은 외부 환경 및 내부 역량의 정밀 분석을 바탕으로 분야별로 ‘빠른 추격자’와 ‘선도자’ 전략을 구분해 적용해야 한다. 먼저 크게 보면 AI 원천기술은 빠른 추격자 전략, AX로 불리는 AI 대전환은 선도자 전략이 필요하다. AI 원천기술에서는 투자, 인프라, 인력 면에서 우리가 추종하기 어려운 압도적 ‘쩐(錢)의 전쟁’을 벌이는 미국, 중국과의 전면 경쟁보다 최근 딥시
1996년 미국 라이프지에 나이키 축구공을 한땀 한땀 바느질하는 한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이 실렸다. 소년의 나이는 12세, 그의 시급은 6센트에 불과했다. 이 보도 이후 나이키는 미성년자 노동 착취를 일삼는 악덕 기업으로 낙인찍혔고, 세계적인 불매운동에 시달려야 했다.20여 년 후인 2018년 나이키는 또 한 번의 보이콧을 겪는다.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과잉 진압해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며 국민의례를 거부한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보수 성향 소비자들은 나이키의 행보가 국민 갈등을 부추긴다며 이 회사가 만든 신발을 모아 불태웠다. 당시 1기 행정부를 이끌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끔찍한 메시지”라며 불매운동을 부추겼다.나이키의 사례는 보이콧 패턴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대다수 소비자가 공감할 만한 흠결이 드러났을 때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보이콧의 타깃이 된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22년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SNS에 ‘멸공’이라는 단어를 올린 후, 진보 성향 소비자들이 신세계 계열사를 겨냥해 불매운동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도마 위에 오른 기업은 테슬라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된 영향이다. 트럼프가 탐탁지 않은 진보 성향 소비자는 물론 DOGE 출범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된 공무원들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 보이콧은 거칠기 짝이 없다. SNS가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도 ‘무력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뉴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