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대표는 “선당 후사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며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다음 대선에 나서는 것을 우선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면서 “하지만 제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선 패배와 제보 조작사건으로 흔들리는 당을 구한다는 게 출마의 명분이다.
재선 의원 출신의 안 전 대표는 지난 5·9 대선 때 국민의당 후보로 나와 21.4%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그는 대선 때 있었던 문준용씨 의혹제보 조작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12일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다”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점에서 반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대해 당 안팎의 부정적 시각이 적지않은 상황에서 출마를 강행한 것은 ‘이번에 잊혀지면 끝장’이라는 판단이 자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3위로 밀린데 이어 제보 조작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터에 장기간 칩거를 할 경우 재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거라는 관측이다.
당 안팎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적지 않다. 제보 조작사건이 아직 마무리도 안된 상황에서 당 대표를 하겠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이 적지않은 게 현실이다. 국민의당 지지율이 꼴지로 밀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숙을 해도 모자랄판에 지금 당의 전면에 나서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이 아니면 재기가 어렵다”는 안 전 대표의 조바심이 결국 대표 출마라는 무리수를 두도록 했다는 관측이다.
안 전 대표의 정치 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전 대표는 이미 지난번 제보 조작 사건 때는 지각 사과로 비판을 받은 터다. 애당초 당 안팎에선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안 전 대표가 즉시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게다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머리 자르기’라며 안 전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 등을 직접 겨냥한 공세를 폈다. 안 전 대표는 ‘안철수 책임론’이 거세지는 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름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유미 단독범행으로 결론을 낸 국민의당 자체 조사를 보고 직접 나설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지만 결국 이 전 최고위원 구속되자 나서게 된 것이다.
안 전 대표의 사과는 성공적인 사태 수습을 위한 세 가지 핵심요소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전문가들은 사과의 3요소로 CAT를 꼽는다. CAT는 contents(내용)와 attitude(태도), timing(시기)이다. 신속하게 진정성을 담아 구체적으로 사과하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총족될 때 사과를 받는 사람이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우선 사과의 타이밍을 놓쳤다. 사건이 불거진 뒤 즉시 국민앞에 나섰어야 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모두 대선후보인 자신을 돕기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인지여부를 떠나 정치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신속하게 나섰어야 했다.
사과의 타이밍을 놓치다보니 태도와 내용도 의심을 받는 처지에 몰렸다. 진정성이 느껴지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안 전 대표는 모든 책임을 진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책임의 범위를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 2선 퇴진 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권의 논란이 수그러들 때까지 당분간 자숙하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정도로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줬다고 보기엔 미흡하다. 사과로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 많다.
이번 출마 선언에도 진정한 반성이라는 필수요소가 빠졌다. 적어도 대선에서 심판을 받은 데 이어 제보조작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정치인이 재기를 위해서는 나름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가장 큰 명분은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사과와 국민의 재기에 대한 지지다. 사건이 마무리도 안된 상태서 강행한 안 전 대표의 출마는 이 두 가지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보름 전 자신의 약속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당분간 정치와 거리를 두라”고 충고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가 전제되지 않는 출마는 욕심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
안 전 대표의 조바심과 현실과 동 떨어진 정치감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안 전 대표는 본인이 의도한 대로 재기에 성공할 지, 아니면 국민 지지를 잃어 추락의 길을 재촉할 지는 국민이 결정할 것이다. 안 전 대표는 말 그대로 정치인생의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