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수가(진료비) 체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의료 혁신은 일어나기 힘듭니다.”

김치원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장(사진)은 “아무리 좋은 헬스케어 기술이나 기기가 세상에 나와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수가를 책정해주지 않으면 병원이 도입해 쓰기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심박수나 혈당을 측정하는 웨어러블기기,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진단 시스템 등이 개발돼도 병원이 이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다. 사회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 서울대 의대 본과 1학년 때 벌써 딴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가 1998년이었요.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영학 석사(MBA) 붐이 일었죠. 저도 이게 뭔가 싶어서 MBA에 대해 찾아보다가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MBA를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내과 전문의 자격을 따고 2008년 3월 맥킨지 서울사무소에 들어갔다.

김 원장은 “진찰과 치료는 환자의 여러 증상을 보고 답을 구하는 귀납적 과정인 데 반해, 컨설팅은 짧은 시간에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미리 가설을 정해놓고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 알아내는 연역적인 업무”라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2009년 12월 맥킨지에서 나온 그는 삼성서울병원 의료관리학과 임상조교수로 2년 반 동안 삼성서울병원의 전략을 짜는 일을 했다. 경기 의왕시에 노인요양병원인 서울와이즈병원을 세운 건 2012년 중순.

김 원장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베인앤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던 선배 의사 배지수 원장이 같이 병원을 세우자고 권유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와이즈병원은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 진료에 충실한 병원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의사이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한 덕분에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창업가들이 그를 많이 찾아온다. 관련 책을 두 권 썼고, 지난해 이 분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라는 액셀러레이터(창업 투자·보육기관)를 세웠다.

“의료수가나 각종 규제로 쉽지 않은 분야라 저는 ‘꼭 해야겠냐’며 창업을 말려요. 그래도 다들 혁신을 일으켜 보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죠. 이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