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생산적 형평성'이 성장과 분배 개선의 지름길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집권했으니 어느 정도 책임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이 담기지 않을까 하던 기대는 무산됐다. 파격적인 정책기조가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해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순화됐으면 좋겠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와 격차 심화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은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그 원인의 진단에는 일면만 부각되고 핵심이 빠져 있다. 제시된 해법의 상당수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걱정스럽다. 우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내세운 ‘사람 중심 경제’는 적확하지 않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적 역량 낙후 추세에 대응하려는 취지는 알겠지만 한국 경제가 압축성장과 활발한 계층 이동을 이룬 일등공신도 인적 자원, 곧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면 정부 간섭을 줄이고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친화적인 경제가 더 절박하다. 정규직에 집착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세금으로 보전하는 등 시장을 왜곡하고 재정과 공무원 수요를 늘리는 패러다임이 더 문제다. 정부가 경제를 이끌던 유산과 표심경쟁에 따른 정책 오염을 차단하고 제조업 중심의 낡은 제도·규범과 일하는 방식을 갱신해야 한다. 이들이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내리는 주범이다.

생산성 향상은 성장과 분배를 함께 개선하는 지름길이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35년간 19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생산성 향상은 해당 부문 일자리는 줄여도 전체 일자리를 늘렸다. 나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최신 연구들은 생산성 향상이 분배도 개선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주요국은 지난 20년 성장이 둔화되고 분배도 악화됐다. 선도부문과 나머지 부문의 생산성 격차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디지털기술 탓도 있지만 약화된 경쟁과 낙후된 교육훈련 등이 그 주된 원인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시아 쿠레시는 혁신기술 보급과 경쟁 촉진 등으로 성장과 분배를 한꺼번에 개선하는 ‘생산적 형평성(productive equity)’을 지향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기업 규모와 고용형태(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임금 격차가 크고, 그것이 양극화의 큰 원인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그런데 산업연구원 등은 이런 임금 격차의 대부분이 생산성 격차와 비례한다고 본다. 따라서 뒤처진 부문의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성장과 분배를 근원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그러자면 구조개혁에 진력해야 한다. 생산성은 그대로 둔 채 정부의 규제와 지원만으로 임금을 끌어올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ECB가 OECD와 유럽연합(EU) 40개국 사례를 분석해 권고한 것과 같이, 지금처럼 실업률이 높을 때 서둘러 노동시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 ECB 분석에 비춰 고용 유연성을 높이면 기업 진입, 경제활동과 노동수요가 모두 증가했다. 우리도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에 기초한 노동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

올 상반기 국제통화기금(IMF)이 펴낸 ‘일의 미래’ 보고서는 디지털경제가 노동시장에 미칠 충격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전일제 근로자가 수행하던 전통적인 작업방식이 일단의 개인사업자와 주문형 작업자의 ‘프리랜서 플랫폼’으로 빠르게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대응하면서 지난 50년간 진전된 분배 악화를 극복하려면 IMF는 전일제 근로자가 ‘소액자본사업가(microentrepreneur)’로 전환하는 ‘대중기반(crowd-based) 자본주의’ 확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비슷한 유형의 ‘독립형 일자리’는 선진국에선 추세로 굳어지고 있으며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라인 연계) 확산과 맞물려 다양한 주문형 플랫폼이 탄생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 근로가능 인구의 20~30%는 특정 기업에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처럼 일한다는 분석도 있다. 전일제, 정규직과 호봉제를 금과옥조로 삼다간 생산성 추락과 일자리 축소, 성장과 분배의 동반 악화를 막기 어려울 것이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