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산재 적용 확대 논란

[뉴스의 맥] 출퇴근 교통사고 산재보험 적용…내년 보험재정 6천억 소요
내년 1월1일부터 출퇴근 중 교통사고를 당한 모든 근로자는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도보는 물론 자전거, 오토바이, 자가용을 이용해 ‘통상의 방법과 경로’로 출퇴근을 하다가 다쳐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지난달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쳐 이달 말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노동관계법은 대부분 노사단체 간 견해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단 상임위원회만 통과하면 본회의 처리는 거의 확실시된다. 현재는 근로자가 출퇴근 중 교통사고를 당하면 자동차보험이 적용된다. 회사 통근버스로 출퇴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노사단체와 정부는 산재법 개정으로 근로자가 더 많이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재보험은 자동차보험과 달리 피해자의 과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연금 형태로 요양급여를 지급하는 등 근로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의 보험료는 운전자가 내지만 산재보험은 원칙적으로 사업주가 부담한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2013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피해자 21만5878명 가운데 48.4%인 10만4447명이 출퇴근 도중 사고를 당했다. 자동차보험을 적용받다가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을 근로자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는 수치다. 산재보험에 상당한 규모의 추가 재원이 필요해진 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에만 6000억원 이상 보험재정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주가 내는 산재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해 산재보험료율은 업종별 차이는 있지만 평균 1.7%다. 정부는 출퇴근 산재 범위 확대에 따른 추가부담을 감안하면 산재보험료율이 1.9% 선까지 올라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근로자 임금총액에 보험료율을 적용해 산출하는 산재보험료는 내년에 10% 정도 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뉴스의 맥] 출퇴근 교통사고 산재보험 적용…내년 보험재정 6천억 소요
헌재 결정으로 국회 논의 급물살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할지는 하루 이틀 된 고민이 아니다.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는 법원 판례가 누적되자 대법원은 2007년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일어나는 출퇴근 재해는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법제화한 것이 통근버스로 출퇴근하다 발생한 교통사고는 산재로 인정한다는 현행 산재보험법이다. 여기서 통근버스 운행이 힘든 영세 사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역차별을 받는 문제가 불거졌다. 출퇴근 도중의 사고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공무원연금법과 비교하면 형평성이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와 학계 등은 근로자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9, 20대 국회에서 산재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배경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사업주가 챙기기 힘든 사업장 밖의 재해까지 사업주가 책임지는 업무상 재해인지를 둘러싼 법률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업주가 재원을 부담하고, 근로자의 과실과 관계없이 보상하는 산재보험의 기본원리에 비춰 출퇴근 재해를 산재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민간 자동차보험을 적용하는 영역을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으로 대체함으로써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쟁점도 많아 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심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9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국회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전기기사가 자전거로 퇴근하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통근버스를 제공할 만큼 여건이 좋은 기업의 근로자만 보호를 받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은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도록 권고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출퇴근 재해를 산재보험으로 보호 등을 들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출퇴근 시에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출퇴근 방법과 경로 선택이 근로자에게 맡겨져 있는 데다 헌재가 불과 3년 전 해당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들어 반대한 소수 의견도 있었다. 헌재 결정으로 해당 산재법 조항은 올해 말까지만 효력이 있다. 법 개정이 늦어지면 내년부터 법률적 공백이 생기는 상황이다.

노동계와 정부는 ‘근로자 보호 강화’와 ‘법률 공백 사태 방지’를 위해 산재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거쳐 조속히 전면 시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사용자의 부담 증가’ ‘행정적·재정적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단계적 시행이 바람직하다는 성명을 냈다.

근로자로선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받는 것이 자동차보험에 비해 전반적으로 유리하다. 법이 시행되면 산재 신청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예측이다. 사업장 밖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는 일반적인 산재 사고보다 조사하기 까다롭고 확인해야 할 사실관계도 더 복잡하다. 정부는 근로복지공단 산재조사 인력을 지금보다 2배가량 많은 1400여 명을 확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업장 밖 재해까지…" 반론도

출퇴근 교통사고를 산재로 처리하면 자동차보험에 어느 범위까지 보상책임을 물을지도 미리 명확히 규정해야 할 사항이다. 출퇴근 교통사고 때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근로자에게는 자동차보험료를 감면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평일에는 근로자들이 자동차를 출퇴근 용도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다. 자동차보험 가운데 책임보험이나 자기 신체사고 부문은 감면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아직 자동차보험료 조정과 관련해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준비 미흡을 지적하는 경영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음주·무면허 운전처럼 근로자의 범법행위나 중과실이 있을 때도 산재로 인정할 것인지 국회 논의과정에서 논란이 됐다. 환경노동위원회 통과로 법률적 논란은 수그러들었다고 하지만 근로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산재법 개정안' 이달 처리될 듯

출퇴근 도중에 발생한 재해를 산재로 볼지는 법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논란이 크고 쟁점이 많은 사안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한데도 지난해 헌재 결정과 올해 초 여야 정권교체기를 전후해 산재법 개정 논의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이달 말 국회를 통과한다면 법 시행까지 5개월밖에 남지 않는다. 2013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 법안의 경우와 비슷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국회는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보완책으로 임금피크제를 명확히 규정해야 했지만 인구고령화 대비라는 명분만 좇아 어물쩍 노사 자율에 맡겼다. 그 결과 개별 기업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노사 간 혼란이 상당기간 증폭됐다. 산재보험법도 사전 준비가 치밀하지 않으면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