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캠프 공신들, 공공기관행 '물밑 전쟁' 스타트
공기업 ‘인사 전쟁’이 시작됐다. 새 정부의 장관과 차관, 외청장 인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기관장 등 공기업 임원으로 가기 위한 대선 공신과 여권 인사들의 물밑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학자 출신인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20일 사표를 제출한 것은 공기업 수장 ‘물갈이’의 신호탄이다. 이 사장의 사표는 곧 수리될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7월 취임한 이 사장은 최근 노동계로부터 ‘공공기관 적폐 기관장 10인’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사임 압박을 받아왔다. 이 사장의 사표 제출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수장들의 사퇴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기업 임원 자리는 2000여 개에 이른다. 한국전력공사 한국관광공사 등 공기업(35개)과 국민연금공단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준정부기관(89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 기타 공공기관(208개) 등 공공기관 332개 기관장과 감사, 임원을 합한 수치다. 청와대는 “공석인 자리를 우선으로 한다”고 밝혔다. 도로공사와 조폐공사 등 이미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된 기관에 대해 청와대가 후보군을 압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권 주변에선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한 인사들이 “청와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대선캠프에 참여한 각계 인사들만 1000여 명에 이른다.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대선 1등 공신인 강기정 전 의원이 도로공사 사장으로 가고, 김효석 전 의원이 마사회장에 내정됐다’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다.

공기업행을 희망하는 인사들의 여권 핵심 줄대기 경쟁도 치열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날 “대선 캠프에서 뛰었던 인사들이 공기업 임원으로 가기 위해 정권 핵심 인사들에게 연락하는 등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며 “이번에 공기업에 가야 21대 국회의원 총선거(2020년 4월) 출마 준비가 용이하다”고 말했다. 2년 정도 일한 뒤 총선에 출마하려면 지금 공기업에 가야 한다는 의미다.

대선캠프에서 일한 한 인사는 “2년9개월 뒤 치러지는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이번에 공기업 임원으로 가려 한다”며 “연락이 닿는 여권 인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인사는 “대선 승리에 기여한 만큼 공기업행은 확정적”이라며 “청와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한 중진 의원 보좌관은 “당 핵심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낙하산·보은 인사는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여야 4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낙하산·보은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는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공기업 임원 자리 외에는 대선 공신들에게 줄 수 있는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다. 역대 정부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창 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