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가속의 시대, 생각의 가치는 왜 올라가는가
와인 업계에는 품질이 뛰어난 포도가 수확되는 빈티지 연도가 있다. 역사에서도 빈티지 연도가 있다. 새로운 혁신 기술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2007년이 대표적이다. 그해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이 출시됐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소통하고 창조하는 방식을 바꿔 놓는 새로운 기업과 혁신이 쏟아져 나왔다.

여러 개의 저렴한 컴퓨터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묶어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인 하둡이 등장해 컴퓨터 저장 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소프트웨어 제작·협력 네트워크인 깃허브가 등장한 덕에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크게 확장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최강자인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고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단말기 ‘킨들’을 출시해 전자책 혁명을 불러왔다. 숙박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 IBM의 인공지능(AI) 컴퓨터 왓슨, 마이크로칩 성능의 획기적 개선을 가져온 인텔의 하이케이메탈게이트 기술도 이때 시작됐다.

기술 발전이 너무나 빠르고 큰 폭으로 이뤄지면서 세상은 예전에 본 어떤 것과도 근본적으로 다르게 변하고 있다. 스스로 달리는 자동차나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는 AI는 이미 현실이 됐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개인의 리더십이나 사회의 윤리적 선택이 따라가기에 벅찰 지경이다. 뉴욕타임스의 간판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늦어서 고마워》에서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개인과 기업, 정부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대책을 모색한다. 퓰리처상을 세 차례 수상한 프리드먼은 세계화를 주제로 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세계는 평평하다》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기도 하다.

이 책의 부제는 ‘가속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낙관주의자의 안내서’다. 저자는 지금을 ‘가속의 시대’라고 지칭한다. 기술발달, 세계화, 기후 변화라는 세 가지 힘이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이크로칩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예를 들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컴퓨팅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가 우리의 일터 정치 지정학 윤리 공동체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기하급수적 변화가 당혹감이나 절망감을 줄 수는 있지만 ‘겁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할 시간을 갖고 가속의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 뭘 할지 생각하라는 것.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 AI를 IA(Intelligent Assistants·똑똑한 도우미)로 바꾸는 해법을 통해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각종 센서로 무장한 빌딩에서는 건물 관리인이 데이터 엔지니어로 변신하는 식이다.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라는 책 제목은 매일 워싱턴에서 명사들과 조찬을 하던 저자가 상대방이 지각하는 바람에 생각지 않게 ‘잠깐 멈출’ 시간을 얻었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 비롯됐다. 저자는 “당신이 늦게 왔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었다”며 미안해하는 상대에게 고마움을 담아 인사했다. 현기증 나는 변화의 속도에 압도되고 지칠 때 잠시 멈춰 서서 깊이 사색할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