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순수한 흑백논리로만 판단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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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 소설을 쓰기까지 대략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었어요. 글 쓰기 전 구상은 저에겐 방해가 될 뿐이에요. ‘써진다’ 싶으면 집필을 시작하고, 다 쓸 때까지 쉬지 않았죠. 자유로운 것, 그것이 제겐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사진)는 지난 10년간(2006~2016년·교보문고 집계) 한국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이어 두 번째로 소설책을 많이 판 작가다. 하루키가 7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1·2》(문학동네)가 지난 12일 국내 번역출간됐다. 예약판매 주문이 폭주하면서 출판사는 정식 출간 사흘 만에 40만 부를 찍었다.
하루키는 문학동네를 통해 서면으로 한 인터뷰에서 “첫 소설을 썼을 때가 스물아홉 살이었는데 지금은 예순여덟이 됐다”며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큼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신작은 하루키다운 면모를 두루 갖췄다. 주인공은 이름 없는 1인칭 화자로 36세의 초상화 화가다. 아내가 돌연 이별통보를 하면서 혼자가 된 ‘나’가 친구 아버지인 일본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아틀리에에서 지내면서 펼쳐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이야기는 《태엽 감는 새》 《1Q84》 등 하루키식 소설의 특징 중 하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엿보인다.
인간의 내적 세계나 환상 세계에서 탈피해 현대사를 응시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일본 화가 도모히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유학 중 나치 저항운동에 휘말렸고, 피아니스트인 그의 동생은 중국 난징전투에 투입됐다가 자살했다. 난징 대학살을 다뤘다는 이유로 그는 일본 극우파로부터 적잖은 공격을 받았다. 평행선을 그리는 역사관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데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루키는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요즘 인터넷상에선 흑백 논리로만 사건을 판단하고, 의견이 같지 않은 상대에겐 말을 돌멩이처럼 던져요. 소설은 그런 단편적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소설이 좋은 의미의 전투력을 갖춰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예절과 상식을 갖춰야 하겠죠.”
주인공이 집을 나와 한 달간 정처 없이 여행하는 도호쿠 지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남은 곳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문단에 쏟아진 ‘세월호 문학’이 상기되기도 한다. ‘재난 이후 문학의 역할’에 대해 묻자 하루키는 “크고 깊은 집단적 마음의 상처를 유효하게 표현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건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명백한 목적을 두고 쓰인 소설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목적을 품되, 목적을 능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설 속에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뭔가를 구축해야만 가능한 일일 겁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사진)는 지난 10년간(2006~2016년·교보문고 집계) 한국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이어 두 번째로 소설책을 많이 판 작가다. 하루키가 7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1·2》(문학동네)가 지난 12일 국내 번역출간됐다. 예약판매 주문이 폭주하면서 출판사는 정식 출간 사흘 만에 40만 부를 찍었다.
하루키는 문학동네를 통해 서면으로 한 인터뷰에서 “첫 소설을 썼을 때가 스물아홉 살이었는데 지금은 예순여덟이 됐다”며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큼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신작은 하루키다운 면모를 두루 갖췄다. 주인공은 이름 없는 1인칭 화자로 36세의 초상화 화가다. 아내가 돌연 이별통보를 하면서 혼자가 된 ‘나’가 친구 아버지인 일본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아틀리에에서 지내면서 펼쳐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이야기는 《태엽 감는 새》 《1Q84》 등 하루키식 소설의 특징 중 하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엿보인다.
인간의 내적 세계나 환상 세계에서 탈피해 현대사를 응시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일본 화가 도모히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유학 중 나치 저항운동에 휘말렸고, 피아니스트인 그의 동생은 중국 난징전투에 투입됐다가 자살했다. 난징 대학살을 다뤘다는 이유로 그는 일본 극우파로부터 적잖은 공격을 받았다. 평행선을 그리는 역사관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데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루키는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요즘 인터넷상에선 흑백 논리로만 사건을 판단하고, 의견이 같지 않은 상대에겐 말을 돌멩이처럼 던져요. 소설은 그런 단편적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소설이 좋은 의미의 전투력을 갖춰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예절과 상식을 갖춰야 하겠죠.”
주인공이 집을 나와 한 달간 정처 없이 여행하는 도호쿠 지방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참상이 남은 곳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문단에 쏟아진 ‘세월호 문학’이 상기되기도 한다. ‘재난 이후 문학의 역할’에 대해 묻자 하루키는 “크고 깊은 집단적 마음의 상처를 유효하게 표현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건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명백한 목적을 두고 쓰인 소설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목적을 품되, 목적을 능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설 속에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뭔가를 구축해야만 가능한 일일 겁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