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만에 잡힌 창원 '골프연습장 살해' 용의자.  연합뉴스
9일 만에 잡힌 창원 '골프연습장 살해' 용의자. 연합뉴스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경남 창원 골프장 부녀자 납치·살해사건의 용의자 심천우(31)와 강정임(36)은 지난달 24일 범행 직후 경찰의 수사망을 보기 좋게 따돌리며 도주 행각을 벌였다. 초동 수사에 실패한 경찰은 최고 500만원의 신고보상금을 내걸고 이들을 공개 수배했다. 이후 6일 만에 접수된 한 제보는 이들을 체포하는 핵심 열쇠가 됐다. 그러나 경찰이 취재 응대 과정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공개한 제보자의 신원과 신고 경위가 한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범인 검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제보자의 신원이 일반에 유출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신고가 위축되고 범죄 수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찰 등 수사기관뿐 아니라 법원 등 사법기관조차 제보자나 증인의 집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번 기회에 증인이나 제보자 보호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보복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보완해 선량한 국민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줄줄 새는 제보자 신상 정보

제보자 정보가 유출되는 1차 경로는 경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이다. 각 지방경찰청 홈페이지는 일반 시민에게도 사건·범죄 관련 보도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4일 외국인 여성을 감금하고 불법 성매매를 강요한 일당이 붙잡힌 사건의 보도자료는 해당 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등록돼 누구라도 조회할 수 있다. 이 보도자료에는 제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사건 경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재판 과정에서 제보자 신원이 노출되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법원 직원의 실수로 신원이 공개된 제보자가 피의자로부터 협박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단속된 술집 주인 A씨(46)가 법원에서 판결문을 살펴보다가 첨부된 112 신고서 사본에서 제보자의 연락처를 발견한 것. A씨는 그가 인근에서 같은 업종의 가게를 운영하던 B씨(24)라는 것을 알아내고 욕설과 협박을 일삼다 경찰에 입건됐다. 법원 직원의 행정 착오로 판결문에서 제보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삭제되지 못한 탓이었다.

무책임한 언론 보도 역시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비보도를 전제로 말한 내용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제보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만큼 기자들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사건 경위를 묘사하는 기사를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익을 위해 용기를 낸 제보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수년 전 경찰이 지명수배자를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준 제보자 A씨(45)는 용의자가 체포된 뒤 자신이 신고한 게 맞느냐는 연락을 수십 번 넘게 받았다. 보복 범죄를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두 달 넘도록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A씨는 “누가 내 정보를 유출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용의자를 목격해도 절대 제보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게 됐다”며 씁쓸해했다.

매년 늘어나는 보복 범죄

보복 범죄는 매년 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이후 보복 범죄 연도별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제보자와 범죄 피해자를 상대로 한 보복 범죄는 2012년 229건에서 2015년 339건으로 늘었다. 지난 5월 일어난 보복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길거리에서 여성을 폭행하다 김모씨(31)의 신고로 체포돼 징역을 살았던 박모씨(55)는 출소 후 김씨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김씨의 유가족은 경찰 조사에서 “박씨가 출소한 뒤 여러 차례 김씨를 찾아와 위협했다”고 전했다.

신고가 위축되고 폐쇄회로TV(CCTV) 등 증거 자료 수집이 어려워지는 등 범죄 수사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5년 디지털포렌식연구지 6월호에 실린 ‘CCTV 영상물의 증거 능력 확보에 관한 연구’에서 현직 경찰관 147명에게 CCTV 확보 방법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0%(103명)가 ‘관리자의 협조를 구해서’라고 답했다. 범행 현장에 있는 CCTV는 영장을 발부받아 조사할 수 있지만, 범행 수사 과정에서 주변의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다른 지점의 CCTV나 지나가는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얻어야 할 때는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경찰서 수사과에서 일하는 김모 형사(41)는 “상점에 설치된 CCTV가 있어도 보복 범죄를 당할까봐 경찰에 보여주지 않는 주인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수사팀 관계자도 “장기 미제 사건은 제보자 없이 용의자를 검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철저한 제보자 보호가 선행돼야 수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복범죄 솜방망이 처벌 탓”

보복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9~2014년 전국 1심 법원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 범죄 675건 중 절반이 넘는 380건이 집행유예(350건)나 벌금형(30건)에 그쳤다. 보복 살인은 최고 사형, 상해는 1년 이상 유기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보복 범죄는 공권력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양형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도 재판부의 인식이 못 미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보복 범죄가 좀 더 폭넓게 인정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 3월 경기 성남에 사는 A씨(33)는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던 B씨(35)를 절도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를 받고 풀려난 B씨는 A씨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혔지만 경찰은 B씨를 특가법상 보복 범죄가 아니라 형법상 특수상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비슷한 시기, 김모씨(29)도 과거 자신을 폭행한 가해자의 위협을 녹음해 신고했지만 경찰은 보복 범죄가 아니라 단순 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 경찰 관계자는 “뚜렷한 보복 목적을 갖고 한 행위만 보복 범죄로 인정할 수 있어 경찰로서는 입증 부담이 있다”고 했다.

수사기관과 언론이 기존 관행을 개선해 제보자 신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서울남부지부장은 “범죄 가해자들은 피해자보다 제보자에게 접근해 해코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적 관심을 끌어 사건을 공론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제보자는 평생 보복 범죄의 공포에 시달릴 수 있는 만큼 수사기관과 언론이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