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우리 대학의 수준은 세계 40위인가 400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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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IT는 실험수업, 국내대학은 전공책만
연구력 떨어지는 게 우리대학 큰 문제점
연구중심대학 늘어야 4차산업혁명에 대응
염한웅 <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
연구력 떨어지는 게 우리대학 큰 문제점
연구중심대학 늘어야 4차산업혁명에 대응
염한웅 <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를 보면 4차 산업혁명의 실질적인 내용보다 일자리 얘기로 출발해 대부분 교육개혁 얘기로 종결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기존 일자리가 퇴출될 것이며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와 기대다. 새로운 일자리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새로운 직업에 대응하기 위한 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면 대학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참이다. 문제는 대학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교육과 연구에서의 창조적 혁신역량을 갖추고 있는가다. 이에 대한 대답은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정해져 있다. 새로운 산업의 변화가 우리 대학들과 상관없이 이미 진행 중이므로 우리 대학이 수세적으로 뒤따라가는 입장인 것이 분명하다.
대개는 이렇게 뒤처진 대학 문제를 학부교육의 형식에서 찾으려 하는데 이것은 대학을 단순한 교육기관으로 보는,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이다. 미국의 선도대학들은 1930년대 이후 연구중심대학이란 특수한 형태의 대학으로 틀을 잡아왔다. 대학원이 중심이고 대학원을 구성하는 탁월한 연구력의 교수들과 이들이 하는 수준 높은 연구가 중심인 것이다. 학부는 대학원의 전 단계로서 의미가 있다. 연구력이 높은 학생을 원하기 때문에 학부교육도 실험과 프로젝트 수행을 통한 수업이 주가 된다. 얼마 전 나온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와 국내 대학의 수업내용을 비교한 신문 기사에서도 이런 차이를 잘 볼 수 있다. 단순히 얘기하면 MIT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실험수업을 하는데 국내 대학은 전공책만 본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학부교육의 목적과 지향이 다르다는 것이고, 그 다름의 근본은 미국의 선도대학들은 연구중심대학이고 우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에 대한 주문들을 보면 연구중심대학이 추구해야 할 내용과 다를 바 없다. 높은 수준의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연구를 하고 이를 통해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며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라는 것 아닌가. 리더십과 창의성, 융합적 사고를 관련 강의를 개설한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는 없는 일인데 많은 대학과 논자들이 이런 접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해외 여러 대학평가기관에서 세계대학 랭킹이 연이어 발표됐다. 서울대, 포스텍, KAIST 등이 최근 20년간 세계 150~200위권에서 50~100위권으로 도약했다는 것은 상당한 발전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평가의 세목을 좀 더 들여다본 기사들은 우리 대학들의 연구력이 평판에 비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한다. 맞는 말이다. 학계의 평판이 주요한 잣대가 되는 대학종합평가와 별도로 대학의 연구수준을 논문의 수준으로 평가하는 대학랭킹도 발표되고 있다. 소위 ‘라이든 랭킹’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랭킹을 보면 국내 선도대학 연구력의 민낯이 드러난다. 국내 대학으로 최고 성적인 포스텍이 402위고 서울대는 619위다. 세계 최고 성적을 내는 10위권 대학들을 보면 우리가 다 아는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이다.
여기에 우리 대학 문제의 핵심이 있다. 아직 연구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선도대학을 운영하는 리더십들이 연구력을 더 끌어올리고 제대로 된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의 주요 내용이라 할 강력한 우수 교수 채용과 지원 프로그램, 책임학과장에 의한 독립적인 학과 운영과 지원, 엄정하고 수준 높은 교수 평가 등을 제대로 시행하는 국내 대학은 찾아볼 수 없다.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하는 교수들과 대학원을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학부교육도 연구와 프로젝트 중심으로 문제해결과 새로운 문제발굴 능력을 위주로 혁신하는 것은 오래된 미국식 연구중심대학의 모델이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요구되는 모델이다. 논자들이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런 미국의 연구중심대학과 이들이 배출한 인재들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작금의 대학교육 혁명이라 할 움직임들도 모두 미국의 선도 연구중심대학이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선도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으로 튼실하게 자리잡기를 바랄 뿐이다.
염한웅 <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면 대학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참이다. 문제는 대학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교육과 연구에서의 창조적 혁신역량을 갖추고 있는가다. 이에 대한 대답은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정해져 있다. 새로운 산업의 변화가 우리 대학들과 상관없이 이미 진행 중이므로 우리 대학이 수세적으로 뒤따라가는 입장인 것이 분명하다.
대개는 이렇게 뒤처진 대학 문제를 학부교육의 형식에서 찾으려 하는데 이것은 대학을 단순한 교육기관으로 보는,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이다. 미국의 선도대학들은 1930년대 이후 연구중심대학이란 특수한 형태의 대학으로 틀을 잡아왔다. 대학원이 중심이고 대학원을 구성하는 탁월한 연구력의 교수들과 이들이 하는 수준 높은 연구가 중심인 것이다. 학부는 대학원의 전 단계로서 의미가 있다. 연구력이 높은 학생을 원하기 때문에 학부교육도 실험과 프로젝트 수행을 통한 수업이 주가 된다. 얼마 전 나온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와 국내 대학의 수업내용을 비교한 신문 기사에서도 이런 차이를 잘 볼 수 있다. 단순히 얘기하면 MIT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실험수업을 하는데 국내 대학은 전공책만 본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학부교육의 목적과 지향이 다르다는 것이고, 그 다름의 근본은 미국의 선도대학들은 연구중심대학이고 우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에 대한 주문들을 보면 연구중심대학이 추구해야 할 내용과 다를 바 없다. 높은 수준의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연구를 하고 이를 통해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며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라는 것 아닌가. 리더십과 창의성, 융합적 사고를 관련 강의를 개설한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는 없는 일인데 많은 대학과 논자들이 이런 접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해외 여러 대학평가기관에서 세계대학 랭킹이 연이어 발표됐다. 서울대, 포스텍, KAIST 등이 최근 20년간 세계 150~200위권에서 50~100위권으로 도약했다는 것은 상당한 발전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평가의 세목을 좀 더 들여다본 기사들은 우리 대학들의 연구력이 평판에 비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한다. 맞는 말이다. 학계의 평판이 주요한 잣대가 되는 대학종합평가와 별도로 대학의 연구수준을 논문의 수준으로 평가하는 대학랭킹도 발표되고 있다. 소위 ‘라이든 랭킹’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랭킹을 보면 국내 선도대학 연구력의 민낯이 드러난다. 국내 대학으로 최고 성적인 포스텍이 402위고 서울대는 619위다. 세계 최고 성적을 내는 10위권 대학들을 보면 우리가 다 아는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이다.
여기에 우리 대학 문제의 핵심이 있다. 아직 연구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선도대학을 운영하는 리더십들이 연구력을 더 끌어올리고 제대로 된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의 주요 내용이라 할 강력한 우수 교수 채용과 지원 프로그램, 책임학과장에 의한 독립적인 학과 운영과 지원, 엄정하고 수준 높은 교수 평가 등을 제대로 시행하는 국내 대학은 찾아볼 수 없다.
높은 수준의 연구를 하는 교수들과 대학원을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학부교육도 연구와 프로젝트 중심으로 문제해결과 새로운 문제발굴 능력을 위주로 혁신하는 것은 오래된 미국식 연구중심대학의 모델이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요구되는 모델이다. 논자들이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런 미국의 연구중심대학과 이들이 배출한 인재들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작금의 대학교육 혁명이라 할 움직임들도 모두 미국의 선도 연구중심대학이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선도대학들이 연구중심대학으로 튼실하게 자리잡기를 바랄 뿐이다.
염한웅 <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