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갤리슨 지음 / 김재영 이희은 옮김 / 동아시아 / 484쪽 / 2만5000원
이 과정에서 각국은 각축했다. 본초자오선을 정하는 국제회의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에 이를 두려고 설전을 벌였다. 본초자오선의 위치가 전 세계에 식민지를 확장해가던 제국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던 것. 시계를 맞추는 것은 단순히 신호를 교환하는 차원을 넘어 과학, 산업, 전쟁, 정복 등과 맞물렸다.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는 시계와 지도의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두 사람의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앙리 푸앵카레(1854~1912)의 이야기다. 아인슈타인은 설명이 더 필요 없는 이론물리학자다. 푸앵카레는 수학의 7대 난제 중 하나였던 ‘푸앵카레의 추측’으로 유명한 프랑스 물리학자 겸 수학자다.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삼체문제, 즉 세 개의 물체가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일 때의 궤적을 탐구하기 위한 혼돈이론(또는 비선형 동역학)의 근간을 마련했고, 추상적 공간의 성질을 탐구하는 위상수학을 창안했다.
책의 저자인 피터 갤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들이 이론적 탐구뿐만 아니라 기술적, 실용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1900년 무렵 유럽은 비상한 기술적 변혁의 중심이었다. 자동차, 전신, 화학적 생산, 전기, 전구, 라디오, 인공적 비행 등 미증유의 새로운 기술이 일상과 미래를 바꿔놓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이 실린 논문을 발표한 1905년에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베른 특허국에서 3등심사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천재 과학자가 사무실에서 특허 서류를 뒤적이는 모습이 뜻밖이지만 특허국 생활이 상대성 이론 발견에 도움을 줬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유럽 철도의 중심지였던 베른의 특허국에는 철도와 시계 동기화에 관한 특허 신청이 많았다. 철도교통에서는 멀리 떨어진 지역의 시계들을 정확히 동기화하는 것이 중요해서였다. 빛을 이용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움직이는 시계들을 서로 맞추고 동기화한다는 상대성 이론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이런 특허들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다.
푸앵카레도 현실문제에 깊이 발을 담근 채 위대한 발견을 이뤄냈다. 푸앵카레는 1893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경도국에서 일하며 경도를 결정하는 문제를 연구했다. 위도는 북극성 위치에 따라 쉽게 정할 수 있지만 경도를 정하는 건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각기 다른 두 위치에서 천문학적인 측정을 할 두 명의 관찰자가 필요하고 이들 사이에는 역시 시간의 동기화 문제가 존재한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의 시계를 동기화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푸앵카레는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규약(conven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푸앵카레의 시간 동기화 개념이 시간과 지도의 통일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저자는 상세히 보여준다. 두 사람이 속한 학교와 직장, 교우관계, 그들의 생각과 연구 목표 등을 편지, 연설문, 강의자료, 회의 기록, 특허신청서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추적한다. 아인슈타인이 공부했던 스위스연방공과대학은 이론과 실천의 연결을 중시했다. 이론물리학자로 알려진 아인슈타인이 장치를 다루는 걸 좋아하는 만물수리공이었으며 고감도 전위계에 관한 특허를 받으려고 했다는 점이 놀랍다. 푸앵카레는 광산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공학적 사고를 키웠고, 파리의 경도국장을 지냈다.
180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육상과 해저에 전신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 경도 탐색 과정에서 지도 제작자들이 겪었던 어려움, 전신 신호를 이용한 시계 동기화와 세계지도 제작 과정, 미터법 규약이 국제화하는 과정 등 20세기 초까지 시계와 지도를 둘러싼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