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전 구글에 불공정 거래를 이유로 24억2000만유로(약 3조원) 벌금을 부과한 유럽연합(EU)이 앞으로 기업의 불공정 거래 등에 ‘선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관련 업체의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전에 미리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기술(IT) 업계에는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겨냥한 유럽의 압박이 갈수록 강해지는 형국이다.
"구글처럼 8년씩 조사 안해"…EU, 불공정 행위 '선제 대응' 추진
◆EU 기업 다 죽기 전에 개입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반(反)경쟁적인 행위를 하려 할 경우 이들의 부정행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기 전 단계에서 이른바 ‘임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이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임시 조치를 성공적으로 취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EU 집행위도 프랑스 사례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U 집행위가 임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는 구글 반독점 건이다. 유럽 내 가격비교 인터넷 사이트들은 수년 전부터 구글이 구글쇼핑에 가입해 돈을 낸 업체를 상품 검색결과 상단에 올려주는 등의 행위로 피해를 봤다고 EU 집행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EU 집행위가 최종적으로 이 행위를 중단시킨 것은 지난달 27일이다. 조사 기간만 8년여에 달했다. 그 사이 이미 ‘온라인 가격비교 사이트’라는 개념 자체가 시장에서 한물간 서비스 취급을 받게 됐고, 관련 업체의 존재감도 미미해졌다. 이는 구글 측에서 자신들이 경쟁 저해행위를 했다는 EU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힌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문화된 규정 활성화 추진

EU 집행위에 임시 조치 권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문화돼 있을 뿐이다. 현행 규정은 EU 집행위가 특정 기업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고 증명해야만 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충족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연장통에 물건이 들어 있는데 사용 조건이 까다로워서 전혀 쓰인 적이 없는 격”이라며 “사용 가능한 도구를 갖기 위해 여러 사례를 찾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마련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 이 문제를 “신속하게 다루기보다는 철저하게 다루려 한다”고 밝혔다.

◆美선 “유럽 기업 보호 의도”

실리콘밸리업계는 갈수록 강도를 높이는 EU와 유럽 각국의 규제 뒤에 깔린 정치·경제적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 유럽이 IT 업계 ‘글로벌 경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분석기사를 냈다. 기업의 자유로운 사업 방식을 인정하는 미국 문화와 사생활 보호, 증오 발언 규제, 독점 규제 등을 중시하는 유럽 문화가 부딪히면서 유럽이 미국 IT업계의 실질적인 규제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시장경제 지지자들은 유럽의 이런 움직임을 ‘정치적 개입’이자 ‘보호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EU가 미국 IT 기업을 조사하는 게 “상업적인 의도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유럽 기업을 보호하려 미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 통신사들이 미국의 와츠앱 등 채팅 프로그램이 확산되면서 자사 문자메시지 서비스 매출이 줄어들자 관련 입법을 요구한 것이나,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자동차 관련 데이터 운용 권한을 (IT 기업이 아니라) 자동차 생산회사가 가져야 한다고 로비하는 것 등이 다.

WSJ는 유럽의 IT업계 규제 방침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주는 사례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구글과 페이스북을 규제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꼽았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