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는 인간의 생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인류는 늘 비옥한 토양과 풍성한 바다를 놓고 싸웠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먹거리가 풍부해진 지금은 양보다는 질을 따지는 시대다. 먹거리는 육체적 허기뿐 아니라 심리적 허기를 달래고 에너지를 전하는 삶의 양분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일종의 식사 일기로 풀어낸 책이 있다.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는 여행사 직원 시노다가 23년간 먹은 하루 세 끼를 짧은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일기를 골라 엮은 책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혼자 차려 먹은 서툴지만 특별했던 식사,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던 날 아내와 먹은 튀김소바, 두 딸이 태어나던 날 먹은 저녁식사 등 그의 삶을 스쳐 지나간 짧은 순간, 삶에서 특별한 날, 그리고 그에 대한 애착과 추억에 음식이 함께 곁들여졌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찰나의 기억이 음식을 통한 감각으로 남은 것이다. 주인공에게 음식은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모티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이 지니는 의미만큼이나 음식을 만드는 요리라는 행위 자체도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리처드 랭엄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과 교수는 《요리본능》이라는 책에서 인류를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것,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요리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에게 요리라는 행위가 갖는 존재감이 있고, 이 또한 다양하기에 먹방을 넘어 쿡방에 열광하는 것이며,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레시피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기막힌 슬픔 속에서도 음식과 함께 인생의 달콤함과 쓸쓸함을 삼키며 삶의 한 페이지를 넘기곤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식품산업이 단지 수많은 제조업 중 하나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받치고 인생을 지탱하는 근간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 회사의 브랜드 ‘청정원’의 슬로건은 ‘푸드를 아는 사람들’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푸드 노하우로 맛있고 건강한 식품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푸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전문가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 식생활이 더 이상 ‘엄마표’ 밥상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성을 갖출 수밖에 없는 시대에 더욱 중요하게 요구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분명 우리가 제안하는 음식을 먹고 만들며 의미를 새길 것이기에 식품산업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임정배 < 대상 대표 limjungbae@daes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