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등 새 정부 노동정책에 "살길 찾자"
"앉아서 망할 수는 없다"…국내서 8개 공장 운영 A사
"최저임금 1만원으로 오르면 도저히 이익낼 수 없는 상황"
공장 절반 동남아행 추진
중견 제조사 절반 "이전 검토"…노조 반발로 중도 포기도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올라가면 웬만한 중소·중견기업의 인건비는 최대 연간 수백억원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다 매년 노사 합의에 따른 임금 인상분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한 임금 보전분까지 더하면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진다. 중소·중견기업에서 “3~5년 후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법무법인 찾는 기업들
상당수 중소·중견기업은 국내에 있는 일부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마진이 박하고 인건비 비중이 높은 자동차부품 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용 금형(금속으로 만든 거푸집) 등을 제조하는 A사는 국내 공장의 절반가량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현대·기아자동차뿐만 아니라 독일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업체에도 납품하고 있다. 해외를 제외한 국내 8개 공장에서만 1800명의 근로자가 일한다. 이 업체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원(기본급 기준)으로 올라가면 연간 인건비 상승액만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연간 영업이익은 100억원대 초반이다. 매년 노사 합의에 따른 임금 인상분까지 더하면 3~5년 후엔 이익을 내기 힘들 것이라는 내부 검토 결과도 나왔다. 회사 관계자는 “연구개발(R&D) 자금을 대기 위해 은행 대출까지 끌어다 쓴 상황이어서 몇 년 후엔 이자비용조차 댈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A사는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공장을 제외한 수출용 제품 공장 가운데 일부를 동남아시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사 회장은 “국내 공장 일부를 해외로 옮기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A사 회장은 조만간 이 같은 계획을 임직원에게 공개할 방침이다.
자동차 소음·진동 저감장치를 생산하는 B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유럽 등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국내 임직원은 1000명을 넘는다. 연간 매출은 8000억원이며 2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낸다. 이 회사는 3년 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각종 상여금과 성과급을 합친 통합임금 기준 시급은 1만7600원에서 2만6000원대로 뛰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 해 직원 임금만 151억원씩 늘어난다는 계산도 나왔다.
매년 노사 협상을 통해 5~7%씩 임금을 올려왔는데, 이런 추세라면 5년 뒤엔 영업이익 대부분을 까먹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B사 회장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존 근로자 임금 보전액과 추가 인력 수요 등을 가늠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작업은 아예 포기했다”며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도 국내에서 공장을 더 돌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반발에 주저앉기도
자동차 부품회사뿐만 아니다. 서비스업을 제외한 웬만한 중소·중견 제조업체 상당수도 공장 해외 이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분위기다. 국내에서 식품을 가공해 판매하는 업체까지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식품업체인 C사는 물류비 등을 감안하더라도 국내에서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공장의 해외 이전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내 공장 증설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기업도 적지 않다. 섬유 제조업체인 D사는 앞으로 국내 투자를 아예 중단하고 베트남 등 해외에만 공장을 짓기로 했다. 중견기업연합회 고위 관계자는 “제조업 회원사의 절반 이상이 공장 해외 이전을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연합회는 국내 중견기업 560여 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
해외 이전을 검토했다가 주저앉은 기업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노동조합과 직원들의 반발이다. 막대한 공장 이전 비용과 해외 현지 공장 부지의 인프라 부족 등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A사 회장은 “노조 반발이 가장 큰 난관”이라며 “회사 문을 닫으면 직원도, 노조도 없다는 점을 간곡히 호소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정부가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 파악부터 한 다음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