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년학’세트장에서 바라본 회진포구. 학이 날개를 펴고 오르는 것 같은 산세 때문에 이 일대 지명이 선학동(仙鶴洞)이 됐다.
영화 ‘천년학’세트장에서 바라본 회진포구. 학이 날개를 펴고 오르는 것 같은 산세 때문에 이 일대 지명이 선학동(仙鶴洞)이 됐다.
남도에서 이만한 곳이 또 있으랴. 전남 장흥은 감성에 젖게 하는 바다와 작은 섬, 이름이 제법 알려진 산까지 두루 갖춘 곳이다. 게다가 한승원, 이청준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를 배출한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맛은 또 어떤가? 장흥삼합을 비롯해 갯장어 샤부샤부까지 지천에 별미가 넘친다. 여행고수들이 즐겨 찾는 장흥에는 색다른 맛과 멋이 있다.

남도 최고의 문학여행지

인도, 중국의 동명 사찰과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리는 보림사
인도, 중국의 동명 사찰과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리는 보림사
장흥은 문학여행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아제아제바라아제》의 한승원이 이곳에서 나고 성장했으며 지금은 귀향해서 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에서 창작과 후학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 《서편제》의 이청준도 장흥 출신이다. 《생의 이면》의 이승우는 물론 한승원 선생의 딸인 《채식주의자》의 한강까지 문학인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흥 출신으로 등단한 작가만 100명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 문단에서의 영향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 때문에 장흥을 ‘문학의 산실’이라거나 한국 최고의 문학 여행지라 부르고 있다.

장흥 회지면 일대는 장흥 문학 여행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승원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 신상리이고 진목리에는 이청준의 생가가 소박한 모습 그대로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청준 선생의 생가는 생전 그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 소담하고 단출하다. 1979년 마을 아래에 정착해 집필을 계속한 이청준은 2008년 7월31일 세상을 떠났고, 마을 언덕배기에 잠들어 있다.

진목마을에서 빠져나와 서쪽 포구에 있는 선학동은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자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실제 촬영 무대다. 회진포구를 멀찍이 감싼 산세가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오르는 듯해 선학동이라 불리고 있다.

포구 앞에는 ‘천년학’ 촬영 당시 사용했던 주막 세트가 남아 있다. 벌써 세월이 꽤 흐르다 보니 낡고 쇠락해서 찾는 이가 드물어졌지만 바다와 함께 한 풍경은 고즈넉하다.

한승원의 문학산책로가 있는 여닫이(바다를 열고 닫는다는 뜻의 수문) 바닷가에는 긴 해변의 산책로를 따라 20m 간격으로 30여 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한 선생은 “내 소설의 9할은 고향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 곳이다

남포마을 소등섬 일몰 일품

석양이 아름다운  남포마을의 소등섬
석양이 아름다운 남포마을의 소등섬
회진면 대리 앞바다는 감성돔의 포인트로 유명한 곳으로 청정해역인 득량만의 들머리에 있다. 사계절 감성돔의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국내 최초의 해양낚시공원이다. 소록도와 금당팔경 등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안전하게 낚시를 할 수 있어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 콘도식 낚시터, 부잔교식 낚시터, 해안데크, 정자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득량만 안쪽에는 남포마을이 있다.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인 이곳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가 촬영됐다. 마을 바로 앞에는 소등섬이 있다. 섬이라고 해봐야 몇 걸음 떼고 나면 다 둘러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마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제법 운치있다. 소등섬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는 마을 남자들이 먼바다로 고기잡이 나가면 아낙네들이 소등(小燈)섬 바위 위에 호롱불을 켜놓고 무사귀환을 빌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섬은 썰물이 되면 활처럼 굽어진 길을 따라 뭍과 연결되고 밀물이 되면 길의 흔적을 지운다. 섬 가운데에는 아낙네들이 염원하는 모습을 담은 동상이 서 있고 바위 위를 비집고 질긴 생명을 이어나가는 소나무가 몇 그루 솟아 있다. 소등섬은 특히 일몰에 찾으면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온통 핏빛으로 물든 해변가에 소등섬이 잠기는 모습은 사진작가들의 마음을 어지간히 흔들어 놓는다.

독특한 산과 보림사까지 절경 이어져

장흥은 포구와 바다 섬까지 있는 독특한 곳이지만 호남을 대표하는 산도 품고 있다. 해발 723m의 천관산(天冠山)은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고 있다. 머리에 아름다운 장식을 단 관을 쓴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천관산은 기암괴석이 첩첩이 둘러싸여 있어 등산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정상에 서면 남해 다도해까지 한눈에 펼쳐지고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제주의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한우가 어우러진 장흥 삼합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한우가 어우러진 장흥 삼합
천관산 기슭에 조성된 천관산문학공원에서도 이 지역 문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이 지역 출신 문학가인 한승원·이청준·송기숙을 비롯해 전상국·구상·안병욱·문병란·박범신·이성복 등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소설가·수필가·아동문학가의 글을 자연석에 새겨 넣은 54개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문탑에는 국내 유명문인 39명의 작품과 육필원고, 연보가 캡슐에 담겨 보관돼 있고, 탑산사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 약 3㎞에 사랑의 돌탑 460여 기가 조성돼 있다.

장흥의 중앙쯤에 있는 사자산(666m)도 제암산(778.5m), 억불산(518m)과 더불어 장흥의 3대 명산으로 꼽힌다. 누워서 고개만 들고 있는 거대한 사자모양을 닮았다고 해 사자산이라 불리는데 장흥읍 쪽 봉이 사자머리 같다 하여 사자두봉, 정상은 남릉과 더불어 꼬리 부분이라 하여 사자미봉으로도 불린다. 산행코스는 여러 개 있는데, 제암산이나 곰재와 연결한 종주코스가 인기다.

해발 510m의 가지산 깊은 산자락에 있는 보림사는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린다. 사찰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석탑과 석등,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로 지정된 동부도, 서부도, 보조선사 창성탑 및 창성탑비 등이 있다. 보림사 뒤편에는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상을 받은 비자림 숲길이 있다. 400년생 비자나무 600여 그루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비자림은 방대한 산림욕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편백나무 특유의 향이 숲 전체에서 뿜어져 나와 온몸이 맑게 깨어나는 시간을 경험하고 싶다면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가 좋다. 한창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봄이면 코끝이 알싸해지는 편백나무의 향이 숲 전체에 피어오른다. 억불산 기슭에 최소 40년생이 넘는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빼곡한 숲을 이룬 이곳은 편백나무의 피톤치드로 심신을 치유하고 생태주택을 체험하는 인공림으로 유명하다.

여행 메모
2017 정남진 장흥 물축제


‘2017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전남 장흥 탐진강 수변공원과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에서 펼쳐진다. 참가자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물장난을 하는 개막 퍼레이드 ‘살수대첩’을 비롯해 물로 즐길 수 있는 육상 및 수상 이벤트, 한여름 밤의 시원한 문화공연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장흥물축제 대표 프로그램인 거리퍼레이드 살수대첩은 7월29일 오후 1시부터~2시까지 군민회관을 출발해 중앙로를 거쳐 축제장인 탐진강변까지 행진한다.

축제기간에 장흥 탐진강 변에서는 신나는 물싸움이 펼쳐진다. 사방에서 정신없이 날아오는 물대포와 물풍선, 그리고 물총 등을 쏘며 장흥 일대를 온통 물싸움터로 만들 예정이다. 축제의 밤을 더욱 즐겁게 해줄 야간공연도 펼쳐진다. 28~30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유명 DJ와 함께 하는 EDM & 풀파티가 이어진다. 7월31일부터 8월2일까지는 뮤직 토크쇼인 별밤 수다(水多)쟁이가 열린다.

장흥 물축제가 처음 시작된 2008년부터 꾸준히 열린 ‘맨손 물고기 잡기’는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장어, 메기, 잉어, 붕어 등을 잡으며 신나는 한때를 보낼 수 있다. 물 위를 걷는 ‘워터볼’, 경주도 하고 체험도 하는 카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정남진장흥물축제추진위원회

장흥=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