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봤다. 사람이든 상품이든 ‘나의 쓸모있음’을 호소하는 것이 시대의 미덕처럼 여겨지건만, 제목부터 ‘알아두면 쓸데없다’고 내건 것이 도리어 시선을 끌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정치, 미식, 문학, 뇌 과학 등 그야말로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여러 주제를 수다처럼 풀어내는데, 인문학이 원래 이렇게 흥미로운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몰입해 시청했다.

프로그램은 제목과 달리 시청자로부터 ‘쓸모가 넘친다’는 호평을 받는 모양새다. ‘인문학 예능’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도 이어진다. 그동안 인문학이 ‘쓸모없는 학문’으로 인식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인문학이라는 소재가 이처럼 뜨거운 호응을 받을 줄 짐작이나 했을까. 언뜻 보기엔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실은 유용하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유다.

사실 무용지용의 철학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갈릴레이, 뉴턴, 다윈, 반 고흐 등 세상을 바꾼 위대한 탐험가, 과학자, 예술가도 어찌 보면 당대에는 ‘쓸모없어 보였던 것’에서부터 과감히 변화의 첫발을 내디딘 경우가 많다. 이들의 연구 결과와 예술 활동은 당시엔 쓸데없고 필요 없는 것으로 인식돼 거센 반발을 낳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쓸모없어 보였던 것’들이 지금은 각 분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필자의 회사에서 음용 식초인 ‘홍초’를 처음 개발했을 때가 그랬다. 홍초에 대한 아이디어는 원래 조미용 식초로 개발하던 석류맛 식초에서 시작했다. 당시 연구팀에서 개발 중이던 석류맛 식초는 붉은 빛깔 때문에 요리에 사용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고민을 거듭해 ‘마시는 식초’라는 새로운 접근으로 홍초를 개발,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마시는 식초 열풍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어쩌면 사장됐을 석류맛 식초의 또 다른 쓸모를 끈질기게 고민하지 않았다면 마시는 식초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때론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거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주역이 된다.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는 기업에 무용지용의 철학이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다. 가끔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서 새로운 ‘쓸모’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현재는 ‘쓸모없는 생각’으로 버려지는 것들이, 어쩌면 변화의 시작점으로 평가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정배 < 대상 대표 limjungbae@daes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