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트 기류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군 B-29 폭격기들이 일본 본토를 공습할 때였다. 조종사들이 9000m 상공을 비행하며 엔진을 최고조로 올렸는데도 속도가 느려지는 기현상을 겪었다. 반대로 귀환길에는 훨씬 빨라졌다. 나중에 기상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비행 경로에서 초속 80m에 이르는 엄청난 서풍을 발견했다.

‘제트 기류(jet stream)’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과정이다. 제트 기류는 대류권(지표~약 1만m) 상층인 8000~1만m 사이에 발달한 좁고 강한 기류다. 풍속은 시속 100~250㎞에 이른다. 스웨덴 출신 칼 로스비, 핀란드 출신 에릭 팔멘 등이 미국 시카고대에서 제트 기류에 관해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제트 기류는 지구 자전과 태양열로 인해 형성된다. 극지방의 찬 공기와 열대지방 더운 공기가 만나 강한 기류를 만들어낸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띠 형태로 북위 30~60도의 중위도를 오르내리며 기상 변화를 일으킨다. 남반구에도 제트 기류가 있지만, 평평한 바다가 대부분이어서 기상 영향은 크지 않다.

지구 자전방향에 따라 제트 기류는 항상 서에서 동으로 부는 편서풍이다. 인천~LA 항로의 경우 LA로 갈 때가 1~2시간 덜 걸린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돌아올 때 제트 기류를 피해 북극 항로를 잡는다. 연료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비행 중 만나는 난기류(turbulence)도 이와 연관이 있다. 특히 맑은 날 생기는 청천(晴天)난류는 강한 기류가 높은 산맥을 넘을 때 생기지만, 대류권과 성층권 권계면(圈界面)의 강력한 제트 기류로 인해 주변 공기가 교란될 때도 나타난다. 호주에선 난기류로 비행기가 순식간에 100m나 떨어져 부상자가 속출한 사례도 있다.

제트 기류는 겨울철 기상이변의 주요인이다. 북극 한파를 가두는 제트 기류가 약해지면 한반도까지 찬 공기가 내려와 이상한파를 초래한다. 이상난동은 제트 기류가 타이트할 때다. 2012년 겨울이 유독 추웠던 것도 제트 기류가 느슨해지면서 폴라 보텍스(북극 소용돌이 기류)가 쏟아져내린 탓이었다.

요즘 6월 초여름 폭염도 제트 기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햇볕이 점점 강해지는데 제트 기류는 도로 북상해 대기 상·하층이 모두 더운 공기로 채워진 찜질방 현상이 빚어진 탓이다. 한낮 30도를 넘기기 일쑤다. 심지어 미국 남서부는 48도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중부지방은 장마가 빨라야 오는 24~25일께 시작된다고 한다. 가뭄이 1주일은 더 지속될 것이라니 걱정이다. 지구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