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당신’ 등 섬세하고 부드러운 언어의 서정시로 유명한 그는 2012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도 꾸준히 시 창작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 5년 만에 시집 《사월바다》를 내기도 했다.
‘신단양’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미세먼지 속에서 목이 터지도록/균등하고 의로운 나라 만들자고 유세를 하고/시장을 돈다(…)네가 남긴 어린 새끼들이/서른이 넘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에도/세상은 네가 꿈꾸는 세상이 되지 못하였다/나는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네 새끼들을 위하여 이기고 싶었으나/단 한 사람을 이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뜻한 바 있어 시인에서 정치가, 사회활동가로 변모했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실의 몸부림 속에서 자책하던 시인은 이내 독백한다. ‘시인이었던 우리가 다시 태어나도/이 일을 해야 할까’
‘침묵’에서는 정치인이 된 뒤 평소 친하게 지낸 주지 스님을 방문한 일화가 소개된다. 정치로 발을 들인 이후 시의 세계를 등진 부끄러운 심경이 엿보인다. 스님은 정치인이 된 시인을 향해 침묵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주지 스님은 가만히 웃으실 뿐/적묵이셨다/어디서 향내가 나네요 하고/말을 건네도 곧 혼잣말이 되고 말 뿐’
침묵 속에 앉아 있는 시인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시인이었다 정치인으로 인사를 온 나는/죽비로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스님의 침묵은 ‘짧았지만 긴 질책’이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