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연출 오경훈 장준호, 극본 손영목 차이영·사진)이 거대 악인 ‘도둑님’과 이들을 응징하는 쾌도 ‘도둑놈’을 대놓고 다루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은 현대이지만 악연의 끈은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과 친일파에 대항한 5인의 독립운동가 모임 ‘의열단’. 그들은 일본으로 반출되려는 국보를 숨기고, 숨긴 장소를 그려놓은 지도를 셋으로 나눈다.
1992년. 70년 전의 기득권층이었던 친일파 후손은 여전히 기득권층이다. 반면 의열단원 할아버지를 둔 장판수(안길강 분)는 생계형 도둑으로 전과 2범이 됐다. 재벌이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는다는 소식에 아들 민재(성인 이후 한준희, 김지훈 분)의 앞날을 위해 신청했다가 지옥을 맛본다. 보물지도를 찾는 친일파 후손 홍회장(장강 분)이 판수를 고문해 의열단 리더 백산장군 손자 김찬기(조덕현 분)를 찾아 일가족을 죽게 한 것.
간신히 찬기의 네 살 아들 수현(이후 장돌목, 지현우 분)을 살려내 자식으로 키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범죄 현장을 목격한 돌목을 제거하려는 홍회장 측은 누명을 씌워 장판수를 전과 3범에 이르게 한다. 의열단의 자손인 윤중태(최종환 분)는 검사이자 홍회장 사위. 거대 악인 홍회장을 돕지만 언젠가는 전복하려는 야망을 갖고 강력반 형사인 강성일(김정태 분)과 함께 장판수를 이용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등장하는 세 아버지 중 자식을 위해 죄를 짓지만 죄가 없는 장판수나 ‘도둑님’에 비하면 정의로운 형사인 강성일은 모두 부인이 없다. 장판수는 홍회장의 음모로 아내를 잃었고 강성일은 일찌감치 상처했다. 강력한 부성애 하나로 근성 있는 쾌도 장돌목과 특수 수사관 강소주(서주현 분)를 키워냈다.
겉으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윤중태의 딸 윤화영(임주은 분)이 의뭉스러운 권력가로 선악의 갈림길에 서는 것에 비하면 실로 위대한 부성애다. 장판수의 친아들임에도 “수많은 선택 중에 도둑질을 선택”한 아버지가 싫어 스스로 고아가 돼 뼈를 깎는 고통으로 검사가 된 한준희가 판수의 누명을 외면하면서 “혼자여도 머리가 될 거야. 꼬리는 잘리게 돼 있으니까”라고 절규하며 윤중태를 선택하는 것 또한 선과 악의 딜레마다.
등장인물 모두 ‘도둑놈’ 아니면 ‘도둑님’이지만 교통사고로 죽은 판수의 아내 하경(정경순 분)은 평범한 서민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 때 “굶어 죽어도 나라는 살리자 싶어 결혼반지를 들고 갔다”는 하경은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인 준희와 돌목에게 반지를 주며 “난 이 도금 반지가 더 귀해. 추억이 반지의 가치지 재료가 뭐가 중해. 또 핏줄이 뭐가 중허냐. 같은 추억을 갖고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겨”라고 유언한다. 결국 소중한 것은 재물이 아니라 함께한 좋은 추억인 것이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후손의 대립과 청산하지 못한 역사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숨겨진 보물 찾기라는 판타지까지 더해져 흥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극 중 배경이 현대로 올수록 개연성 없는 악인들의 행보는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그나마 쾌도 장돌목의 활약상이 성인이 될수록 힘을 받는 게 볼거리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