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적벽대전(赤壁大戰)일 것이다. 유비와 손권이 이끄는 10만 연합군은 조조의 80만 대군과 양쯔강 남안의 적벽에서 맞닥뜨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연합군의 책사 제갈량은 곧 불어올 남동풍을 예측해 조조의 대군을 불화살로 무찌른다.

적벽대전에서 연합군의 전세를 역전시킨 남동풍은 최근 한국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국민 마음까지 뿌옇게 흐리던 미세먼지를 한 방에 날리고 청명한 하늘을 선사해줬다. 남풍을 뜻하는 ‘마파람’ 덕분에 미세먼지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진 것이다.

바람 방향은 수시로 변하지만 한반도의 풍향을 단순화하면 겨울은 북서풍, 여름은 남동풍이다. 온 국민의 짜증지수를 높이던 미세먼지가 걷힌 것은 북서풍에서 남동풍으로 바뀐 영향이 크다. 물론 미세먼지 발생의 한 원인인 화력발전소에 대한 셧다운제 역시 미세먼지를 잦아들게 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화력발전소뿐 아니라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등 환경 문제에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우려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2015년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한 파리협정은 195개국이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합의다. 교토의정서에는 탄소배출국 1, 2위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불참했고 참여국도 37개에 불과했던 데 비해 파리협정은 지구촌 전체의 합의였던 것이다.

환경 파괴가 가져올 재난적 상황은 영화 ‘투모로우’ 등을 통해 간접 경험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영화의 소재를 넘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일찍이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의 각본을 쓰고 직접 출연해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이런 고어의 행보에 비춰볼 때 “기후변화는 가짜”라고 주장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판을 깨는 트럼프의 결정은 얼마나 치졸한지 선명하게 대비된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주(州)정부와 대기업들이 파리협정을 준수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정치적 상징성 이상의 실질적 효과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9%는 파리협정 탈퇴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가진다는 말이 있다. 환경 문제에서 ‘갈라파고스 섬’이 되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지도자가 되기에는 함량 미달이 아닌가 싶다.

박경미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kparkmath@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