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언론 보도나 대외적으로는 사전에 조율된 ‘공식 언어’가 나갔다. 그래서일까. 퇴임 후 법정에 섰던 그였지만 공식 일정에서 구설수나 말로 인한 에피소드로는 남은 게 별로 없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인기도 끌었고 구설에도 올랐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대일(對日) 발언이 대표적이다. 일본 수구 정치인들이 이따금씩 내뱉는 일상적(?) 망언에 대통령이 너무 정색했던 게 초기의 높은 지지율에 고무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직설적·격정적 언어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어록에는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라는 말도 있다.
‘정치의 9할이 말’이라고도 한다. 아젠다를 선점하고 언어의 유통을 장악하는 싸움으로 정치를 볼 수도 있다. 이런 데서 ‘갑(甲) 중의 갑’이 대통령이다. 리더십도 좋은 말에서 잘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 중에도 유머 구사를 잊지 않았다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그렇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양대 위기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은 미국인들 마음을 다독여준 큰 힘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어떨까. 몇몇 격한 언어에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다. 엊그제 국회 연설에서는 청년실업을 언급하며 ‘국가적 재난’이란 표현을 했다. 실업 문제에 주목하고 심각성을 강조하려는 심정은 이해된다. 하지만 수년 이상 서서히 악화돼 온 해묵은 숙제가 실업 문제다. 계절요인 등에 따라 회복세로 돌아서기도 하는 만성 과제다. 대통령이 조급증을 낸다고,특급 긴장국면으로 몰아세운다고 즉각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파장에서 보자면 국방부 사드 배치 보고에 대한 ‘충격적’이란 말도 아쉬움을 남겼다. 비정규직 해법에 우려 목소리를 낸 경총에 “반성 먼저 하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여파가 적지 않았다. 국정과제라는 게 당사자들에게는 피 말리는 사안이다. 그만큼 모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언어가 격해질 때 일선 공무원들까지 덩달아 과격해지지는 않을까, 그게 더 겁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