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에 여권 일각은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법조계에선 비판적 견해가 우세하다. 우선 재판부는 청와대와 삼성 측 관련 부분은 판단에서 제외했다. 이는 동기 없이 외압을 가했다는 기이한 논리가 된다. 재판부는 삼성 측 이득액(특검 주장 8549억원)과 국민연금 손실액(1387억원)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고 봤다. 절차에 위법성이 없고 손실액도 모르는데 배임이란 결론을 내린 셈이다.
더 큰 논란은 정책 판단을 사법적 단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다. 당시는 헤지펀드가 삼성물산 경영권을 위협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었다. 국민연금이 국익을 위해 합병의 ‘백기사(우호세력)’로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만약 국민연금이 반대해 삼성 합병이 무산되고 경영권 위협이 현실화했다면 어떤 평가가 나왔겠나. 일각에선 이번 판결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 기소와 연관지어 해석하지만 그런 게 아니길 바란다.
과거 정권에서도 외환위기 책임론 등 공직자의 정책 판단에 대한 단죄 시도가 있었지만 법원의 최종 판단은 ‘무죄’였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법정공방으로 고통받고 공직사회는 일할 의욕이 꺾였다.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번 판결은 과거 판례와도 차이가 커 파장이 적지 않다. 공직자들이 보신에만 급급하면 ‘결정장애 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강조한 기금 운용의 독립성도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주인이고, 노후 쌈짓돈이다. 안정성과 수익성 극대화가 필수다. 정치와의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재벌개혁’과 복지 공공투자에 동원하려 한다면 이율배반이다. 750여 개 상장사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은 앞으로도 비슷한 논란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다른 주주들의 의사에 따라 의결권을 배분하는 ‘섀도보팅’만이 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