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8일 오전 6시15분

[마켓인사이트] 모텔 청소하던 이 남자, 6000억대 기업 일구다
숙박 O2O(온·오프라인 연계) 사이트인 야놀자 이수진 대표(40)의 손은 특이하다. 손가락 뼈마디가 보통 사람의 두 배쯤 된다. 손도 공사장 인부처럼 두툼하다. “모텔에서 침대에 이불을 끼우는 일을 오래 해서 그렇습니다. 이불을 팽팽히 펼치고 이걸 무거운 매트리스 밑에 끼워 넣으려면 어지간한 손아귀 힘으로는 안 되거든요.”

이 대표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에서 대표적인 ‘성공 신화’로 통한다. 지방 전문대 출신에 모텔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이제는 6000억원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야놀자는 8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끄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로부터 6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숙박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로는 최대 금액이다. 야놀자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는 형태다. 야놀자의 기업가치는 6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 한복판의 ‘촌사람’

[마켓인사이트] 모텔 청소하던 이 남자, 6000억대 기업 일구다
야놀자 사옥은 서울 강남 한복판인 테헤란로에 있지만 이 대표는 ‘촌사람’ 티가 역력하다. 군복무를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모텔에서 청소를 포함한 온갖 잡일을 하며 숙식까지 해결했다.

오래 일하다 보니 모텔의 문제점이 보였다. 엄연한 중가 숙박시설이지만, ‘불륜의 상징’으로 비쳐지면서 손님들이 겪는 불편을 봤다. 그가 여느 아르바이트생과 달랐던 점은 이 불편을 해결하려는 데 천착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모텔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를 열었다. 이를 기반으로 모텔 컨설팅을 해주는 B2B(기업 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모텔 정보를 투명하게 알려줘 모텔 시장을 양성화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007년 야놀자닷컴을 열었고 첫해부터 수익을 내며 매년 50~100%씩 성장했다.

야놀자는 지난해 매출 684억원, 영업손실 30억원을 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8월부터는 다시 매월 흑자가 나고 있다”며 “모텔 광고수수료 외에도 직영 모텔 운영,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등 사업을 다각화해 올해는 흑자전환이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1000억원 이상 매출에 100억원대 영업흑자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업 다각화로 올 매출 1000억원 예상

물론 사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여기어때’라는 강력한 경쟁 서비스가 나오면서 시장에선 한때 야놀자 위기설이 돌기도 했다. 여기어때는 방송인 신동엽 씨를 모델로 쓰며 시장에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대표는 모텔 양성화와 고급화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야놀자 본사 2층에는 좋은숙박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선 모텔 창업자를 위한 교육은 물론 운영에 필요한 마케팅, 서비스 교육 등을 해 준다. 창업 과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료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사물인터넷(IoT) 객실관리 시스템도 직접 개발했다. 객실에 센서를 부착해 도어록 자동 개폐, 전원 차단 등을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직원이 적은 모텔은 호텔처럼 바로바로 응대할 수 없다”며 “이 같은 시스템을 통해 고객의 불편을 줄이고 사업자의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운도 따랐다. 최근 여기어때가 해킹당하면서 고객의 모텔 숙박 정보가 그대로 새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본적인 보안 시스템도 갖추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어서 업계의 지탄이 잇따랐다. 하지만 야놀자는 거의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았다.

스카이레이크의 이번 대규모 투자 결정은 숙박 O2O 서비스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국내 모텔 시장 규모는 연간 약 15조원으로 추산된다. 반면 앱(응용프로그램)을 활용한 모텔 이용자는 아직 5%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만큼 성장 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스카이레이크는 5년 내 기업공개(IPO) 추진을 투자조건으로 내걸었다. 업계에서는 야놀자의 성장세를 감안할 때 3년 내 상장 추진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윤선/이지훈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