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막을 올린 박씨의 개인전은 이 같은 영상예술 ‘피처링 시네마 아트’를 집중 소개하는 자리다.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안녕, 安寧, Farewell’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세 개의 비디오 채널로 구성된 ‘시민의 숲’을 비롯해 ‘작은 미술사’ ‘승가사 가는 길’ ‘밝은 별’ ‘칠성도’ 등 영상작품 12점을 내놓았다.
지난해 제작한 26분짜리 흑백 영상작품 ‘시민의 숲’은 화가 오윤(1946~1986)의 미완성 그림 ‘원귀도’와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시 ‘거대한 뿌리’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동학 농민운동부터 6·25전쟁, 광주 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비극적이고 혼란스러운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이름 없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영상예술로 승화했다. 이 작품은 다음달 15일 개막하는 세계 최대 미술장터인 스위스 아트바젤에 선보일 예정이다.
서구 중심 미술사에 의문을 제기한 영상작품 ‘작은 미술사’도 관람객을 반긴다. 동서양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사진을 배치하고 설명을 연보처럼 달아 미술사를 자신의 독창적 판형으로 제시한 게 이채롭다.
북한산 승가사로 가는 길을 따라 체험한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작품,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금속용구인 ‘명두(明斗)’를 소재로 왜곡된 전통문화를 조명한 ‘붉은 별’과 ‘칠성도’ 등도 눈길을 끈다.
박씨는 이번 전시에 대해 “우리 근·현대 역사의 잘못이나 오류를 따지기 전에 그 자체를 상대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관람객이 작품활동 결과뿐 아니라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과 그 이면에 있는 작가의 사적인 생각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대와 캘리포니아 예술대를 졸업한 박씨는 ‘피처링 시네마 아트’ 장르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2004년)을 비롯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황금곰상(2011년), 에이어워즈 지성 부문상(2012년) 등을 차례로 받아 주목받았다. 영화감독 박찬욱 씨의 동생인 그는 2015년에는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박찬욱·박찬경 형제는 오는 3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에 3차원(3D) 영상 작품 ‘파킹찬스’를 출품한다. 전시는 7월2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