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보폭 넓히는 구본준…LG 미래먹거리 '진두지휘' 나섰다
구본준 (주)LG 부회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분기 임원 세미나를 구본무 LG 회장 대신 주재했다. 구 회장이 임원 세미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 건 1995년 회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구 부회장의 경영 보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임원 세미나는 분기별로 LG 계열사 임원 300~400명이 모여 특정 주제에 대한 강연을 듣는 자리다. 구 부회장은 올 1월부터 계열사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발굴 등 그룹 경영 전반을 맡고 있다. 구 회장은 최고경영진 인사 등 주요 경영 현안만 관할한다. 구 부회장은 지난 1월 부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자(CEO) 40여 명이 모인 ‘글로벌 CEO 전략회의’와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인재 유치 행사 ‘LG 테크노콘퍼런스’도 구 회장 대신 이끌었다. 지난해까지는 구 회장이 빠지지 않고 참석한 행사다.

세미나도 ‘구본준 스타일’로

경영 보폭 넓히는 구본준…LG 미래먹거리 '진두지휘' 나섰다
이날 구 회장을 대신해 연단에 오른 구 부회장은 “글로벌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경쟁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쟁 우위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장에는 평상시보다 많은 400명 이상의 임원이 모여 구 부회장의 말을 경청했다.

세미나 방식도 평소와 달랐다. 임원들은 외부 연사 강연 없이 LG경제연구원에서 준비한 △모듈러 생산 등 혁신 사례 소개 △융·복합 정보통신기술(ICT) 발전 방향 △중국 산업정책 동향 등의 주제 강연을 20~30분씩 속도감 있게 들었다. 모듈러 생산방식과 ICT 발전에 대한 강연은 구 부회장 지시에 따라 급히 준비됐다는 후문이다. 각각의 부품 덩어리를 미리 만든 뒤 하나로 조합하는 모듈러 생산방식은 LG전자가 가전사업에서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평소 체계적인 생산체계 구축을 통한 비용 절감과 신사업 발굴을 강조해온 구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강연 내용에 반영된 것이다.

경영 화두는 ‘변화’

구 부회장은 올 들어 지속적으로 LG 경영진에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날 그는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냉철하게 살피고 조속히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글로벌 전략회의에서도 “사업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게 변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방식에 얽매여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면 앞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했다.

사업 전환기에 과감한 의사 결정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구본준식 경영’이 그룹 차원에서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00년대 중반 LG디스플레이를 이끌 때 구 부회장은 한 해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LCD(액정표시장치) 공장 투자를 단행했다. LG디스플레이가 올해까지 8년 연속 세계 1위를 달리게 만든 초석을 놓은 것이다.

2011년 실적 부진에 빠진 LG전자의 ‘구원투수’로 등판해서는 실적 반전을 이루고 전장(電裝)사업 등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했다. 재계 관계자는 “구 부회장 지휘 아래 LG 계열사들이 신사업 발굴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전장사업에서 추가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M&A) 시도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