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초,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선전(深) 등 경제특구 반대론자들을 ‘좌경(左傾)’으로 지칭하며 경고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개혁·개방의 ‘파일럿 프로젝트’조차 반대하던 ‘보수 세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으로 중국 공산당사(史)에 기록돼 있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우경(右傾) 기회주의’ ‘주자파(走資派)’로 낙인찍히며 고난의 세월을 견딘 덩과 중국의 대반전(大反轉)이었다. 보수 좌파진영 원로였던 천윈(陳雲)은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는 게 어떻게 개혁일 수 있느냐”며 ‘일단 경제특구 현장을 다녀와 보라’는 덩의 권유를 끝내 물리쳤다.

당시 중국 관련 기사를 읽으며 ‘진보·개혁’과 ‘보수·수구’라는 용어가 한국과 정반대 맥락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을 쓴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폴란드 체류시절의 경험을 ‘엄청난 충격’으로 회고한다. “1990년대 체제 전환기의 폴란드에서 한국과는 정반대로 사회주의가 우파(右派)로 인식되고,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반공 인사들이 좌파로 분류되는 모습은 진보 역사학자인 내게 충격적이었다.”

이런 개념 혼란은 진보, 보수, 좌파, 우파라는 용어의 코미디 같은 유래와 무관하지 않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대혁명’을 성공시킨 시민세력이 왕정을 대신할 공화정 의회를 구성하면서 등장한 게 ‘좌파=진보’ ‘우파=보수’ 개념인데, 그렇게 분류한 기준이 엉뚱했다. ‘앙시앵레짐(ancient regime·낡은 체제)’을 철저하게 파괴해야 한다며 급진 개혁을 주창한 자코뱅당(黨)이 의회 왼쪽, 점진적인 온건 개혁을 추구한 지롱드당이 오른쪽 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좌·우와 진보·보수 구분이 탄생했다.

오래전 얘기를 끄집어낸 건 요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 드라이브에 개념 착오가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국민이 주인인’ ‘함께하는’ ‘안전한’ ‘활기찬’ 대한민국 실현을 4대 비전으로 내걸고 기초 작업으로 ‘적폐 청산’을 다짐했다. 기득권 집단의 적폐와 약자 차별로 인한 사회적 격차를 해소해야 통합과 화해를 통한 ‘더불어 성장’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기득권=보수우파 전유물’이라는 전제 아래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일자리 대책이 대표적 예다. 문 대통령은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하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재정을 동원해 81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 외에 눈에 띄는 해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기업 정규직에 과도하게 쏠린 고용 보장과 급여 등의 혜택을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는 물론, 취업시장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청년실업자들이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양보가 필요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서비스산업 부문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 제거 등 규제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노조를 앞세운 이익집단들의 로비에 밀려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강고한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더라도 ‘진보’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입을 닫는다면 ‘통합의 정치’라고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엊그제 고(故)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보 정권 10년, 보수 정권 10년을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분야별로 좌·우나 진보·보수를 헷갈리게 하는 기득권 재편작업이 곳곳에서 이뤄져 왔다. 이 점을 제대로 살피는 일이 대한민국의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진영의 함정에 빠져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