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도입 취지는 좋은 데 현실성이 떨어지다 보니 업무에 혼선만 빚고 있습니다.”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임원들이 요즘 ‘테슬라 요건’ 상장 관련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유망 기업과의 초기 IPO 논의 단계에서부터 ‘테슬라 요건 상장 추진’으로 잘못 알려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기업으로부터 항의를 듣거나 불필요한 해명을 늘어놔야 해서다.

테슬라 요건은 사실상 ‘주관사의 추천’만으로 유망 기업 상장이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미국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처럼 적자를 내면서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금융위원회가 올해 도입했다.

어떤 기업이 ‘한국의 테슬라’가 될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벌써부터 수많은 1호 상장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다. 전자상거래와 정보기술(IT) 솔루션, 로보어드바이저 등 유망 업종 기업이 IPO를 준비할 때마다 이 요건의 활용 가능성이 빠짐없이 제기된다. 스스로 ‘최적의 후보’라며 거래소에 문의하는 기업들도 수십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구체적인 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테슬라 요건 상장을 위해선 ‘투자자에게 환매청구권(풋백옵션) 제공’이라는 큰 걸림돌을 넘어야 한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장 후 3개월간 공모주를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주관사에 되팔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예비상장 기업과 주관사 사이에 불편한 협상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기업은 공모가를 최대한 높여 많은 자금을 조달하는 게 목적이지만, 주관사는 반대로 최대한 깎아 풋백옵션 위험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유망 기업이 상장하기 위한 다른 다양한 창구가 존재한다는 것도 테슬라 요건의 활용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바이오의약품업체 등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은 2005년부터 코스닥시장의 ‘기술특례’ 상장 제도를 활용해 상장하고 있다. 적자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형 성장 유망기업’ 요건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했다.

대다수 대형 증권사는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도입한 제도에 부응해야 하는 ‘임무’ 때문에 더욱 골치가 아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1호 기업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더욱 세심하게 찾을 수밖에 없다”며 “큰 고민거리”라고 털어놨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