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안식에 머물지 말고 미래 준비를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조지 이스트먼이 1892년 설립한 이스트먼 코닥은 카메라의 대중화라는 혁명을 일으킨 혁신기업이었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사이즈의 작고 아담한 카메라를 개발하고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작업을 대신 해줌으로써 누구나 손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단순히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기업이라는 점에서 코닥은 20세기를 점유한 위대한 기업이었다.
영화 발전에도 코닥은 큰 영향을 미쳤다. 코닥이 1928년 천연색 필름을 발명한 이후 영화산업은 더욱 대중화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개봉한 영화의 70%에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가는 크레딧에 코닥이라는 브랜드가 선명하게 찍혀 있을 정도로 영화산업과 코닥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영화 촬영에도 디지털 카메라가 쓰이기 시작했다. 필름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에 처음에는 저예산 영화들만이 촬영에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 시기 전 세계 감독들은 앞다퉈 필름 카메라를 옹호했다. 영화의 심도와 색감에서 디지털은 절대 필름의 그것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필름이 사라진다면 영화를 찍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만큼 2000년대 초반 영화산업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은 뜨거운 이슈였다. 그런데 이 뜨거운 논란은 어느 순간 순식간에 종결됐다. 코닥이 2012년 파산했기 때문이다.
코닥의 몰락은 모든 기업에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파산의 결정적 이유는 디지털 카메라였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 개발자 역시 코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코닥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하고 1975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모든 것을 무시했다. 그 결과 130년 가까이 세계시장을 선도해온 기업은 몰락했다. 반면 만년 2등에 머무르던 후지필름은 생명산업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살아남았다. 한국 영화계도 할리우드도 필름 없이는 예술성도 산업성도 멈출 것처럼 치열하게 고민했으나 코닥이 사라지자 영화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디지털화됐다. 사용자와 산업의 지형 변화가 시장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일인지 필름의 종식을 통해 경험했다. 어쩌면 이제 향후 몇 년이 ‘코닥 모멘트’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디지털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융합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기업, 사용자, 고용주, 직원 모두 새로운 모멘트로의 이동을 예측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코닥’처럼 단어만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이 주는 순간의 안식에 머무를 때가 아니라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