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국정원리, 즉 원칙과 신뢰, 투명과 공정,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을 내걸었는데 마지막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 쓴 미완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이같이 털어놨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평검사들과의 대화’ 같은 파격 소통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본인 스스로 실패를 자인했듯, 소통 문제는 집권 5년 내내 대통령을 괴롭혔다. 소통을 위한 노력은 때로는 의도와 달리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시절 권한대행을 지낸 고건 전 국무총리는 당시를 회고하는 책을 내며 제목을 아예 《국정은 소통이더라》고 지었다.
[한국 대통령의 리더십] 국민 인기 의식한 '보여주기식 소통'…국정은 더 꼬였다
전직 대통령 집권 시절을 돌아보면 소통의 성패가 곧 정권의 성패로 연결되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위기나 변곡의 순간일수록 대통령의 소통은 빛을 발했다. 외환위기 국면에서 집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취임도 하기 전인 1998년 1월18일 ‘국민과의 TV 대화’를 통해 소통에 나섰다. 비록 한정된 공간이지만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누는 소통 방식은 처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이런 노력은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은 계기가 됐다.

소통이 변화와 개혁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업계와 학계, 정부 부처(당시 상공부) 의견을 받아들여 1980년 컬러 TV의 국내 판매와 방송을 허용했다. 컬러 TV는 “흑백 TV를 보는 저소득층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이전 정권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군부 독재’라는 딱지가 붙은 전두환 정권이지만 이 조치는 국민의 문화생활을 향상시키고 국내 가전업 발전에 공헌한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12월 열린 문화·예술인 모임에서 한 코미디언으로부터 “대통령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되겠습니까?”라는 건의성 질문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이 “물론입니다”라고 답하자 그를 비롯해 정치인을 소재로 한 코미디에 물꼬가 트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이 취임 전인 1998년 1월28일 당선인 신분으로 국민과 TV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경DB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이 취임 전인 1998년 1월28일 당선인 신분으로 국민과 TV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경DB
소통은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과의 소통 노력이 외환위기 극복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각에선 ‘말의 성찬’이란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평적 대화’라는 형식을 강조한 나머지 실행에선 다소 미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노동개혁이 대표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노사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기구로 노사정위원회를 처음 발족했다. 하지만 첨예하게 엇갈리는 노사 간 문제를 합의제 기구인 노사정위에서 풀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 무리였다. 당시 노사정위에서 활동한 한 대학교수는 “과거 김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이던 노조와의 소통에 치중한 나머지 실질적인 개혁 성과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100일째에 질문자와 질문을 사전에 정하지 않은 파격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과의 소통에 나서려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회견 횟수도 과거 여느 정권보다 많았다. 하지만 취임 초기부터 언론과 지나치게 각을 세우면서 소통 노력은 반감됐고, 집권 내내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6월20일 미국산 소고기 파동 당시 특별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경DB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6월20일 미국산 소고기 파동 당시 특별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경DB
잘나가던 정부가 소통 부재로 꼬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군부 내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시행 등 개혁정책을 밀어붙이며 높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중요 정책들이 대부분 밀실에서 결정되는 게 문제였다. 금융실명제는 발표 하루 전까지도 당시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조차 모른 채 진행됐을 정도였다. 이 같은 ‘비상조치식 개혁’이 소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결정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갈수록 비판은 거세졌다. 김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1월12일에서야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외환 사정을 보고받은 것은 불통의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관들과도 스스럼없이 ‘폭탄주 회동’을 할 정도로 소통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해 그 안전성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결과 대규모 촛불집회를 야기시켰다.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장(정치학 박사)은 “국론이 양분돼 있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집권하는 다음 대통령은 무엇보다 국민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보여주기식 소통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크다”며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실질적인 소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