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범죄 처벌법 있는데도 '공원 음주 금지' 조례 또 제정, 서울시 '과잉 입법' 논란…처벌기준도 모호
30일 새벽 1시 서울 서교동 홍익어린이공원. 늦은 시간인데도 술을 마시며 길거리 공연을 즐기는 젊은이로 북적였다. 노점상은 즉석 칵테일을 판매하고, 공원 곳곳엔 빈 소주병과 맥주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만취해 외국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남성과 엎드려 토하는 20대 여성도 보였다.

오는 11월부터는 이처럼 서울시내 공원에서 소란을 피우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서울시의회가 ‘서울특별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을 지난 28일 가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벌 기준이 모호해 조례를 시행하기도 전에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경범죄 처벌법보다 못한 불필요한 과잉입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례에 따르면 서울시는 월드컵공원, 서울대공원 등 도시공원 22곳과 주택밀집지 어린이공원 37곳 등을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음주청정지역에서 술에 취해 소음을 내거나 악취를 풍기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시민이 112에 신고하면 경찰이 관할 구청에 알리고, 구청이 과태료를 물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주취자(술에 취한 사람)’ ‘소음’ ‘악취’ 등의 기준이 모호해 실제 처벌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조례는 주취자를 ‘음주로 인해 판단력과 신체 기능이 저하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라고 규정했다. 몇dB 이상을 소음으로 규정할지나 악취를 판단할 객관적 근거는 명시하지 않았다.

도로교통법이 음주운전 처벌 기준(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상)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것과 차이가 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눈으로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속을 맡게 될 구청의 한 관계자는 “기준을 두고 다툼의 여지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난감해했다.

이미 경범죄 처벌법에 음주소란이나 노상방뇨, 불안감 조성 등을 처벌하는 규정이 있어 중복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범죄 처벌법은 음주소란에 대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조례에서 정한 과태료보다 훨씬 위중한 처벌이다.

형사법 전문가인 방정현 정앤파트너스 변호사는 “경범죄 처벌법으로도 조례가 규정한 만취자를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며 “법리적으로 봤을 때는 불필요한 입법”이라고 설명했다. 홍익어린이공원 앞의 한 음식점 주인은 “공원에서 조용히 술만 마시면 된다는 얘기 아니냐”며 “경찰이 주변 순찰을 자주 도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실효성 없는 과잉입법은 여론 눈치보기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당초 이번 조례의 핵심은 한강시민공원에서의 음주 금지 여부였다. 이 문제가 지난해 6월 관련 조례안이 발의된 이후 논란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례는 한강을 적용 대상에서 원천배제하는 책임회피성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와 시의회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알맹이 없는 생색내기 입법으로 핵심을 피해갔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조례안을 발의한 김구현 의원(더불어민주당·성북3)은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을 위한 상징적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