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울을 보면 ‘내가 더 이상 예전의 그 건장한 무슬림이 아니구나’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3년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장. 과장된 몸짓에 심각한 표정으로 던진 오바마의 한마디에 폭소가 터져나왔다. 자신을 수년째 괴롭히던 이른바 ‘오바마 무슬림설(設)’에 회심의 ‘한방’을 날린 것이다.

오바마는 이런 특유의 너스레와 웃음으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코미디언’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위트로 상황을 반전시키곤 했다. 취임 초 상무장관 지명자들이 잇달아 중도하차했을 땐 “미국 대통령 역사상 이렇게 빨리 3명의 상무장관을 지명한 적은 없었다”는 유머로 곤경을 비켜가기도 했다.

부드러움은 뻣뻣함을 이긴다. 독설과 자극적인 선동에 능한 정치인도 유머와 위트로 무장한 지도자를 넘어서긴 힘들다. ‘웃음의 묘약’을 활용해 큰 업적을 남긴 리더는 많다.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유머 감각이 남달랐다. 독설을 퍼부으며 달려드는 정적(政敵)을 유머로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과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도 유머의 달인이다. 밥 돌 전 미국 상원의원은 그의 저서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이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견뎌내는 데 큰 도움이 된 위트를 구사했다”고 했다.

독일 통일을 일군 콜 전 총리는 자신을 풍자한 ‘콜 시리즈’ 유머의 주인공으로 독일 국민을 즐겁게 했다. 미국 ABC 방송은 2015년 10월 성공한 정치인의 필수 자질로 ‘유머 감각’을 꼽은 국민이 74%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지도자의 유머가 한 나라 정치 수준의 척도’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한국 정치판에는 유머가 부족하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막말과 선동 등 네거티브 공세가 거세다. ‘초등학생’ ‘정치 폭군’ ‘무자격자’ 등 상대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독설과 ‘호남 홀대’ 등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얘기들이 쏟아진다. 대화와 타협, 배려와 여유보다 ‘승자 독식’ ‘강행 처리’ ‘결사 저지’ 등 대결 문화가 뿌리 깊은 탓이다. 국민들도 아직은 정치 지도자의 유머보다는 ‘진지함’을 중시하는 듯하다.

서양 속담처럼 유머 없는 정치는 스프링 없는 마차와 같다. 길바닥의 돌에 부딪칠 때마다 삐걱거릴 뿐이다. 우리는 언제쯤 풍부한 유머로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