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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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이 뉴욕 증시에 대한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부상했던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이 끝난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안전자산인 채권을 버리고 기대수익이 높은 주식으로 갈아타는 투자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18일(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가 월가의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매달 실시하는 설문조사(FMS)를 보면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비중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1윌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펀드매니저들의 83%는 미국기업들의 주가가 과대평가가 돼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트럼프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폭적인 감세를 핵심으로 한 세제개혁안은 올해 안에 마련되기 어렵다고 보는 펀드매니저들이 40%에 달했다. 스티믄 므누신 재무장관이 전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세제개혁안이 당초 계획보다 지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내 처리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월가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미 국채가격의 기준이 되는 10년물 수익률은 0.07%포인트 급락한 연 2.176%까지 하락하며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쏠림현상을 반영했다. 올들어 채권펀드에 유입된 투자금은 주식펀드를 넘어서면서 ‘트럼프 트레이드’의 위력도 급격히 약화되는 분위기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는 ‘동물적 야성’을 깨울 것으로 기대했던 ‘트럼프노믹스’가 지지부진하면서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은 유럽과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BoA는 지난달 미국증시에서 유럽증시로 옮겨탄 투자금 규모가 1999년 이후 다섯번째로 많았다고 전했다.

마이클 하트넷 BoA 수석 투자 전략가는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NF)의 마리 르펜 후보가 당선될 경우 유럽증시를 대표하는 유로스톡스지수가 5~10%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의 해체라는 테일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최근 2개월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신흥시장에도 최근 5년래 최대의 투자금이 몰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했다.

월가는 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영국 증시와 영국 파운드화에 대해서는 투자비중을 줄이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의 현금보유비중도 지난달 4.8%에서 4.9%로 소폭 높아져 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다소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BoA 메릴린치가 매달 둘째주 내놓는 이 설문조사 결과는 경기 지표와 자금흐름 등의 통계가 후행하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시장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자료다. 투자은행(IB)과 헤지펀드, 연기금, 사모펀드 등 기관투자자의 최고투자책임자(CIO), 포트폴리오 매니저, 수석 투자전략가 등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진다.

월가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설문조사를 보면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거래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지만 이를 추종할 경우 자칫 ‘막차’를 타게 돼 손실을 볼 수도 있다”며 “대세를 따를지, 과열되는 시장을 피해야 할지는 전적으로 펀드매니저의 판단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